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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 시인의 고난을 만나며

조회 수 897 추천 수 0 2011.12.04 03:17:05


Philipe Alexandre Belisle...Nostalgia(Reprise)

 

 

 

TV 토론을 보다 한나라당 의원과 그 무슨 변호사란 작자의 유들유들한 궤변을 보다 혈압이 올라 TV를 껐다.
부도덕한 권력의 눈으로 어찌 시민사회의 민주성과 역동성을 볼 수 있을까?
그저 놈들에겐 심장이 오그라드는 불가항력의 충격을 진하게 한번 주든지,
다 삭았을 놈들의 박제 같은 혈관에 신선한 새 피를 강제로라도 공급하든지,
아니면 대대적인 골청소를 해버리는, 그런 방법이 아니면 도무지 방법이 없다 느꼈다.

 

 

밥 먹고 똥 싸고 일하며 사랑하고 투쟁하는 성실한 인간의 모습은 없고,
걸핏하면 사랑이며 이별에다 중고생에게나 통할 법한 감성적인 언어에 호소하는 싸구려 시가 넘치는 문단에
노동자 출신의 젊은 시인 송경동이 몇 년째 목숨을 내놓고 권력에 저항하고 있다.
미군기지 이전을 위해 조상대대로 그곳에서 살아온 주민들을

한 순간에 내쫒았던 평택 대추리의 저항 현장에 그는 있었으며,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치열한 투쟁의 현장이었던 기륭전자에도
용역깡패들의 살인적인 철거폭력이 감행되었던 용산에도 있었다.

 

 

9.jpg 

                                                  <부산역 희망버스 행사>

 

 

대규모 정리해고가 예고되어 있던 한진중공업에서
홀로 85호 크레인으로 올라가 저항하던 김진숙과 한진 노동자들을 위해
그는 희망버스를 계획하고 실천한 죄로 구속되었다.
비록 남들처럼 넉넉히 배우지도 못하고 가난에 쫒겨 힘겨운 노동자로서의 역정을 계속해온 그는
아마도 첨예한 현장을 통해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유가 더욱 깊고 넓고 높아졌을 것이라 짐작한다.

 

 

엊그제엔 주례에 있는 부산구치소로 면회를 갔다.
이미 25년 전, 구치소 맞은 편에서 사상공단 노동자 자녀들을 위한 탁아소를 운영했던 나로선
부산구치소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고, 최근에도 수감 중인 후배에게 책 몇 권 넣어주느라 다녀온 익숙한 곳이다.
전교조에서 만난 후배와 면회신청을 한 후, 책과 몇 가지의 밑반찬을 영치품으로 넣고 기다리니 우리 차례가 되었다.
송경동 시인, 그는 너무도 온화하고 뽀얀 얼굴이었다.
문을 들어서는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내 눈에선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슬퍼서 흐르는 눈물이 아니라
아마도

가냘픈 그가 여태 살아오며 지탱해왔을 고난에 대한 깊은 연민의 눈물 같은 것이었을 게다.

 


사람의 손조차 한번 잡아볼 수 없게 한 이 비인간적인 교도행정에 분노하며
주어진 7분 동안 낡아빠진 소형 마이크 시스템에다 입을 대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 했다.
정치범의 경우 일반사범의 면회에는 없는 교도관이 동석하여 우리의 대화를 기록한다.
두꺼운 아크릴판과 철망으로 칸막이를 만든 좁은 면회실에서

작은 증폭기에 의지해 대화를 나누다 잘 들리지 않으면 우린 몇번이고 다시 말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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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타는 대추리 들판>

 


용산 사태 때 추락하여 목과 허리를 다친 그의 건강을 물으니 몸 한쪽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럽다 하는데
수술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견해가 있었음에도 며칠 전 구속적부심에선 기각되었다.
이 천사 같은 시인에게 왜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지, 감옥에 가두어서 과연 어떤 벌을 주려 하는지,
구속적부심 기각 판정을 내린 판사에 대해 분노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운동 열심히 하며 건강 잘 챙기라고 당부하곤 면회를 끝냈다.
다시 찾아오겠다 약속을 하곤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면회실 문을 나설 때까지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영치품으로 넣어준 책 갈피엔 이렇게 썼다.
"당신은 내 마음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시인입니다."
외로이 칼 끝에 서서 가장 치열하게 살아온 노동자 시인 송경동, 그와 헤어지며

난 두 손을 모으고 "사랑합니다.", "기도합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신작시집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을 다시 펼치며 그에게 전할 책을 준비하고 있다.
그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된 날, 그는 제 29회 신동엽 창작상을 수상하게 되었는데
아래는 감동적인 그의 수상소감문이다.

 

 

poet-song.jpg

             <구치소 이감 직전의 송경동 시인>

 


칠흑 같은 밤, 맨발로 빗속에서 낯선 주소를 묻는 아이처럼

 

 

다섯 달 수배 생활을 마치고 자진해 들어 온 부산서부경찰서 유치장.
첫날, 관식이 무척 맛있어 진짜 이번엔 사는가 보구나 했습니다.

그간 기륭전자, 용산참사 사건 등으로 세 번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는데
그때마다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나와서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릅니다.
이번엔 꼭 몇 개월이라도 살다 나가겠습니다.

 

 

근 몇 년 넋이 빠져 살았습니다.
어느 땐 백발이 성성하고 허리가 구부러진 평택 대추리 어르신들 곁이었고,
잠깐 눈을 감았다 떴더니 67일째, 94일째 굶고 있는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 곁이었고,
잠깐 다시 눈을 감았다 떴더니 용산4가 다섯 분의 시신 곁이었고,
잠깐 다시 눈을 감았다 떴더니 이번엔 내가 기륭전자공장 앞
포클레인 붐대 위에서 죽겠다고 매달려 있었습니다.
잠깐 다시 눈을 감았다 떴더니 내가 폭우를 맞으며 목발을 짚고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잠깐 다시 눈을 감았다 뜨고 나면,
조금은
편안하고
행복하고
안전한,
사람들의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혹여 제가 무슨 고민이 깊어 그랬을 거라고 생각지 말아 주십시오.
다만 사는 게 조금 외롭고 쓸쓸해서였을 거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탁발한 시인의 길이었을 거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한편, 가끔 시인들은 넋이 좀 빠져 저 세상으로도, 이 세상으로도
좀 왔다 갔다 해야 제 맛인 거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하튼, 거의 사회적으로 시인의 탈을 쓴 "전문시위꾼"으로 낙인찍히던 때
구사일생으로 창비와 신동엽 선생님께서 저를 다시 시인으로 호명해 주셨습니다.

 

 

오전엔 체포영장 발부 소식을,
그리고 오후엔 수상 소식을 듣게 되는 기가 막힌 날.
오전 체포영장 소식도 덩달아 무슨 큰 상 소식처럼 들리던 날,
오후 수상 소식이 오히려 엄중한 탄압으로 느껴지기도 하던 날이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더욱 열심히 살고, 쓰겠습니다.

신동엽 선생님의 시 <종로5가>에 나오는 칠흑 같은 밤,

맨발로 빗속에서 고구마 한 자루를 메고 낯선 주소를 묻는 한 시골아이처럼,
장총을 곁에 세워두고 어느 바위 곁에 누워 곤히 잠든 한 동학농민군처럼 그렇게,
조금은 높고 외롭고 쓸쓸하게 살아갈 것을 다짐해 봅니다.

 

 

2011년 11월 23일 (수) 16: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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