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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팅 '옥자'

조회 수 877 추천 수 0 2017.07.03 02: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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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팅 '옥자'


난 TV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 이야기의 내용이나 구조보다는 현실성의 결여, 지나치게 잦은 반전, 인간의 사고력과 극의 진지함을 갉아먹는 특유의 가벼운 느낌, 응접실이나 식탁을 둘러싼 등장인물 중 카메라가 있는 쪽은 아무도 앉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풍경, 사람 사는 곳 같지 않은 1차원적 세트, 이부자리에 누운 배우의 덕지덕지한 화장, 이런 자잘한 장면들이 뭉쳐져 드라마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화 옥자의 초반 30분은 황홀했다. 강원도 산골의 초록빛 숲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미자와 옥자, 할아버지의 언어와 표정, 연신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듯한 몽환적 자연과 초록빛 생명 감각, 영화의 느린 호흡은 마치 깊은 숲속에 정말 그들이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충만한 리얼리즘과 영화의 집중력이 그랬다. 

보는 내내 아름다운 강원도 산골에서 시작한 영화가 뉴욕을 왔다 갔다 할 것이 아니라, 대도시 서울과 강원도를 오가며 좀 더 격렬한 체제 비판의 메시지와 토착화한 돼지 이야기였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나는 옥자가 끌려간 이후의 이야기에 실망했다. 뜬금없이 나타나 영화를 이끄는, 재미도 없고 상영 시간만 잡아먹은 동물해방전선 멤버들의 엉성한 연기와 이야기 구조, 군데군데 보이는 서울 풍경의 비현실성, 비실비실 다 죽어가면서도 생명의 의미를 설파하며 먹는 걸 마다하는, 그러면서도 그 많은 미국 내 슈퍼돼지의 해방을 방기한 채 한국에 와 거의 테러에 가까운 무장투쟁(?)을 하는 APL 멤버들이 몹시 산만하고 어설프다는 느낌이었다.


통인익스프레스로 옥자를 싣고 달아날 때 짐칸에서 나누는 그들의 대화와 표정, 카메라 워킹은 지나치게 정적이어서 옥자를 탈취하여 질주하는 이삿짐 차 짐칸 내부가 아니라 어느 조용한 사무실에서 이념 논쟁하는 풍경 같았다. 살아있는 거대한 동물을 싣고 도망가는데 이리 고요하고 흔들리지 않는 이삿짐 짐칸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결국 야만적인(세상 어디서든 도축장은 야만적일 터) 미국의 기업식 도축장에서 미자가 갖고 있던 황금 돼지로 옥자를 사서 되돌아오는 거로 영화는 마무리되었지만, 뉴욕의 슈퍼 돼지 축제 풍경의 박진감을 제외하고는 여기저기 자잘한 장면에서 "뭐 이래?"라는 느낌이 잦아서, 소문만 자자하고 별로 먹을 게 없는 잔치 풍경이지 싶었다. 

마지막 5분쯤 남기고, 관객의 휴머니즘 충만한 '동물적(?) 가슴'을 데워줄 거라고 기대했던 아기 돼지의 즐겁고 풋풋한 연기가 없어 아쉬웠으나, 옥자와 대규모 돼지 공장의 풍경을 섬세하게 처리한 CG를 본 것에 반 본전은 건졌다고 생각한다. 


지난 민중총궐기 때 서울역에 내려 광화문으로 향할 때 여기저기 전봇대와 버스 광고판에 붙은 옥자의 로고를 보며 '저게 뭐지?' 하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영화 '옥자'의 마케팅은 매우 치밀하게 진행되는 중일 것이다. 

극히 제한적인 예술영화 상영관과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한 개봉 과정도 예정된 마케팅의 수순으로 보인다. 


집으로 돌아오며 막둥이에게 감상 소감을 물었더니 '그런대로 재미있었지만, 감동은 별로인' 영화라 했다. 그래서인지 대공원 앞을 지나며 감자탕 먹고 싶다 하여 24시 감자탕 집에 들어갔는데, 흡입욕을 통제할 만큼 돼지에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던 탓일까, 아들이 '슈퍼 돼지보다는 맛있겠지.'라고 해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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