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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 일기 212. 등 따시고 배부른 것들에게

조회 수 169 추천 수 0 2018.05.31 13:57:32





등 따시고 배부른 것들에게



밥의 굴종과 

체제의 피 냄새, 그 

불가항력의 모욕에 단 한 순간도 

침몰한 적 없는 그대 

꾸역꾸역 받아먹기만 해온 

그대 잘 가라


지천으로 무너진 절망과 

밤새 울어 벌건 눈자위를 비웃으며

분노의 경계 밖에서 

제 땀과 눈물 한 방울 보태지 않았던

등 따시고 배부른 것들이여

삶이 지루해 누렇게 바랜 것들이여

잘 가라


가라

누렇게 바랜 

통합의 언어와 

위로와 

민주주의와 

통합의 인간들이여


그대의 몸에 

땟국처럼 눌어붙은 

부드러움을 가장한 위선과 

행복을 가장한 음모와 

용서를 가장한 복수와 

지성을 가장한 욕망 다 싸 들고

그대들의 왕국으로 가라


그대들이 떠난 이곳이 

밥과 피와 

모욕과 침몰과 절망만 남은 

분열의 동굴이어도 좋다

작은 섬이어도 좋다


가라

등 따시고 배부른 것들이여 

그대들이 그려온 거대한 땅과 

하늘과 바다가 아니라 

풀 한 포기와 

별과 달과 시냇물이, 그 

미세한 기원(起源)의 세포들이

무수한 상처와 눈물끼리 

캄캄한 땅속에서 굴뚝에서 크레인에서

만나 부둥켜안고 쓰다듬으며 

기어코 살아갈 테니



부쩍 미세 분열이 아쉽다. 민중 예찬이 아니라 등 따시고 배부른 것들의 권력 예찬이 지천으로 흩날리는 탓이다. 대체 뭘 살피고 뭘 봉양하는지, 걸핏하면 악수하고 웃고 축전을 보내는 권력의 모습에 넌더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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