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이왈신 동지 영전에 바치는 추모의 시



동지여 가십니까

여울이 흐르고 흘러 

바다로 가는 길이 이리도 아득합니까

오늘도 뭇 생명은 줄기로 가지로 

잎으로 꽃으로 지천에 솟구치건만 

동지여 어찌 이리 안타깝게 떠나십니까


엄혹한 시절 

폭력과 죽음의 난장을 버팅기며 

만나면 시도 때도 없이 결의를 나누던 

우리의 꿈은 어디다 던지시고 

이리 안타깝게 먼저 떠나십니까


동지여 기억합니다

한 움큼 신문을 들고 

끼니도 거르며 숨차게 오르내렸던 

산동네 딱지 지붕 처마 밑에서 숨 고르던 

그 낭떠러지에 선 당신의 불안을 기억합니다


분단의 고난과 비애를 껴안고

집집이 찢어진 가슴과 가슴의 합일과 

찢어진 반도의 남과 북, 그 압제의 사슬 너머로 

지독한 통일의 꿈을 움켜쥔 채  

한갓 머슴이길 자처했던 동지를 기억합니다


가난했지만 투명하게 웃을 수 있었던 

동지의 낙관과 가난한 순명

동지의 토박한 사투리와 투쟁조차

여기 우리의 기억 속엔 

지금도 지천으로 흩날리고 있습니다


아, 꿈에도 그리던 바다에 닿기도 전에 

소금내 풍기는 강물의 투항이 슬프듯

동지의 애달픈 삶이 

저 대양의 물결에 닿지 못해 슬픕니다


동지여

동지가 만든 빈자리에 남은 우리는 

이별의 명령에 순종하며 사무치도록 

바다를 향해 꾸역꾸역 흘러갈 것입니다

이렇게 흐르고 흘러

또 흐르고 흘러

훗날 언제든 어디서든 우리 다시 만나거든

감천동 산삐아리에서 본 민중의 숙명을 

속절없이 추억하는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동지여 기도합니다

경박한 체제의 물신이 조롱해도  

감천동 비탈길 골목골목을 누비며 

인간의 소외에 웅숭깊이 다가가 

하얀 벽지 바르고 낡은 지붕 뜯어고치며

민중의 소박한 벗이 되고자 했던 동지의 소망이 

그곳 하느님의 나라에서 부디

평화와 안식으로 깃들기를 기도합니다


동지여 

부디 잘 가소서

이제 모든 것 내려놓고 

주님 곁에서 편히 쉬소서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21 투병 일기 215. 무죄 판결에 부쳐 운영자 2018-08-14 16
» 투병일기 214. 이왈신 동지 영전에 바치는 추모의 시 운영자 2018-07-14 76
319 투병일기 213. 꽃대를 바라보며 운영자 2018-06-25 98
318 투병 일기 212. 등 따시고 배부른 것들에게 운영자 2018-05-31 169
317 투병일기 211. 자학(自虐) file 운영자 2018-02-04 1089
316 투병일기 210. 이제야 강인가요 file 운영자 2017-12-13 1113
315 투병일기 209 / 지진 file 운영자 2017-05-16 1984
314 투병일기 208 / 시집을 읽을 때 file 운영자 2017-03-16 2195
313 투병일기 207 / 고해(苦海)의 진동 file 운영자 2017-03-11 2197
312 투병일기 206 / 수저 한 벌 file 운영자 2017-03-11 1930
311 투병일기 205 / 빗방울 file 운영자 2016-09-02 3338
310 투병일기 204 / 식물의 삶 file 운영자 2016-08-06 3419
309 투병일기 203 / 마담 이 여사 file 운영자 2016-07-23 3546
308 투병일기 202 / 나는 개돼지야 file 운영자 2016-07-12 3432
307 투병일기 201 / 음모 file 운영자 2016-05-26 3685
306 투병일기 200 / 나의 바다로 file 운영자 2016-05-21 3416
305 투병일기 199 / 꽃잎의 분신 file 운영자 2016-04-06 3618
304 투병일기 198 / 봄밤 file 운영자 2016-03-25 3445
303 투병일기 197 / 불량 file 운영자 2016-03-25 3176
302 투병일기 196 / 교환 file 운영자 2016-03-18 3418
301 투병일기 195 / 나무의 묵언(默言) file 운영자 2016-03-09 3651
300 투병일기 194 / 김치 2. file 운영자 2016-03-06 3493
299 투병일기 193 / 우물 file 운영자 2016-03-05 3760
298 투병일기 192 / 노르웨이 숲 file 운영자 2016-03-05 3620
297 투병일기 191 / 바라보기 file 운영자 2016-03-05 3646
296 투병일기 190 / 엄마 냄새 file 운영자 2016-03-05 3426
295 투병일기 189 / 간여 file 운영자 2015-12-20 3952
294 투병일기 188 / 부정교합 file 운영자 2015-12-05 3992
293 투병일기 187 / 장물 file 운영자 2015-12-05 3800
292 투병일기 186 / 적의 소굴 file 운영자 2015-11-26 3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