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신도림역 1번출구 김밥 전쟁

조회 수 8684 추천 수 0 2012.01.06 21:34:37
214.jpg

 

 

오전 7시 즈음의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 1번 출구.

종종걸음으로 출근길을 재촉하는 이들이 지하철 역사를 오가는 인파의 한 귀퉁이에 매우 낯선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접이식 간이 테이블 위에 김밥이 든 스티로폼 상자를 올려놓고 장사를 하는 노점상 부부,

그리고 부부를 빙 둘러싸고 있는 짙은 색 점퍼의 건장한 청년들.

부부와 청년들 사이엔 다른 이들의 통행을 막기 위한 커다란 화분이 자리 잡고 있다.

청년들은 인근 백화점에서 고용한 보안직원이다.

김밥을 사려면 보안직원으로 만들어진 ‘인(人)의 장막’을 뚫어야 한다.

보안직원들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는 시민들에겐 살짝 길을 비켜주지만, 먼저 길을 열어주진 않는다.

김밥 노점상을 돕고자 나와 있는 노점노동연대(노노련) 회원들이 주변을 서성이고 있다.

양측 사이의 언쟁이 간헐적으로 벌어지면서 언제 터질지 모를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돈다.

김밥 노점과 이를 막으려는 백화점 간의 싸움.

양측은 모두 자신들의 정당성을 호소하는 근거로 ‘상식’을 내세운다.

신도림역의 아침 풍경은 2011년 한국사회에서 과연 누구의 상식이 더 옳은 것인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신도림역 1번 출구에서 일어났던 일

국내 유력 기업 D그룹은 2007년부터 신도림역 1번 출구 바로 옆에

백화점과 호텔, 사무실 등으로 구성된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원래 이곳은 D그룹 소유 땅과 국유지가 복잡하게 섞여 있던 곳.

D그룹은 사업을 진행하면서 1번 출구 옆 부지를 공원으로 만들어 국가에 기부채납했다.

구로구청은 하는 김에 공원시설 관리까지 해줄 것을 요청했고, 백화점 측은 수용했다.

남편 박모(47)씨, 아내 김모(50)씨 부부는

백화점이 오픈하기 전인 지난해 6월부터 신도림역 1번 출구에서 김밥을 팔았다.

공원 공사가 진행된 탓에 부부는 출구 근처 여러 곳을 옮겨 다녀야만 했다.

부부는 출근시간에만 잠깐 장사를 하는 데다

통행에 방해도 주지 않았던 자신들의 장사가 문제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지난 8월 백화점이 문을 열고, 공원 공사도 대부분 마무리되면서 사건이 터졌다.

공원시설 관리를 맡은 백화점 측이 그 앞마당 격인 1번 출구 공원에서 벌어지는 ‘불법 행위’ 차단에 나선 것.

허가받지 않은 노점 행위는 불법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생계형 노점상들에 대해 구청이 단속하지 않고 있다.

노점을 단속할 행정력이 없는 백화점은

지난달 20일부터 김밥 노점으로 가는 길목을 차단하는 방법으로 실력행사에 나섰다.

1년 넘게 장사를 해 왔던 박씨 부부는 반발했고, 부부를 돕기 위해 노노련 회원들이 지원에 나섰다.

지난달 24일 백화점 보안직원들과 노노련 회원들 간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다.

보안직원 일부가 다쳤고, 아내 김씨는 떠밀려 바닥에 쓰러졌다.

이달 2일에는 노노련 회원이 ‘백화점의 탄압’을 규탄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이틀 후에는 박씨가 용역들의 훼방을 피하고자

지하철 역사 안으로 들어가려다 서울메트로 직원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국지전은 계속되고 있다.



백화점의 상식: 공공장소서 불법 안된다

“우리도 우리 이미지 깎이는 거 안다. 그러나 이를 감수할 만큼 중요한 문제다.”

백화점은 이 사건이 ‘대기업이 생계형 노점상을 쫓아내려고 용역을 동원했다’는 식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보안직원들 옆에 ‘우리는 용역깡패가 아닌 세금 내는 성실한 시민입니다’

‘공원에서 불법 장사는 말아주세요’ 등의 문구가 적힌 시설물을 배치한 것도 이런 시선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이미지에 타격을 입으면서까지 노점상을 쫓으려는 이유는,

한번 예외를 허용하면 걷잡을 수 없이 밀릴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일단 한 명 들어오면 그 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느냐는 항의가 당연히 들어옵니다.

한번 밀리면 결국 노점상 천지가 될 텐데 시민들이 좋아하겠습니까?

근처 구로역에 가보세요. 처음에 들어온 한 명을 가만 뒀더니 역과 AK플라자 백화점을 잇는 통로를

저들 조직원 노점상들이 다 장악했어요.

노점 한 사람과 싸우는 게 아니라 그 뒤의 조직과 싸우는 겁니다.

” 백화점은 김밥 노점을 돕는 노노련 회원 중 일부가 AK플라자 근처에서 노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백화점에게 박씨 부부는 단순한 뜨내기 노점이 아니라 불법 노점상 조직의 선봉대인 것이다.

-하지만 1번 출구 앞은 백화점이 국가에 기부채납한 국가 땅이다. 백화점이 노점을 쫓아낼 권한은 없지 않을까?

“맞다. 우리 땅 아니다. 기부채납하면서 용적률 상향 등 얻은 인센티브도 없다.

하지만 우리 앞마당이고 우리가 관리하기 때문에 주인의식을 갖고 있다.

이곳은 우리 그룹이 처음 서울에 들어왔을 때 사무실이 있던 장소라 애정도 깊다.

그래서 해외 유명 건축가를 초빙해 설계할 정도로 공을 들였다.

공원 조성에 약 400억원이 들어갔고 청소, 보안, 전기·수도 등 관리비용만 연간 5억원이다.

우리 땅은 아니지만 ‘시민을 위한 공원’을 만들자는 구청의 취지,

기업 이윤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우리의 철학이 맞아떨어지면서 기꺼이 그 돈을 부담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곳을 노점상이 주인인 공간으로 방치할 수 없다.”

-아침 출근시간에만 잠깐 장사하는 생계형인데도 허용할 수 없나?

“김밥을 담은 박스 5개를 가져온다.

하루에 700개 판다. 한개 1500원이라고 치면 하루 매출이 100만원이 넘는다.

토요일, 일요일 빼고 한달 20일 일한다고 해도 월 매출이 2000만원이다.

절반만 이윤으로 남겨도 매달 순수익이 1000만원이다. 과연 생계형이라고 할 수 있는가?”

백화점은 노점상에게 다른 곳으로 이동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매출이 떨어지니까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장사 잘되는 자리 지켜서 손해 안 보겠다는 겁니다.”

백화점은 단속에 나서지 않는 구청에 대해서도 분노를 보였다.

백화점은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던 지난달 24일의 CCTV 영상도 공개했다.

건물 옥상에서 내려다본 화면 속에선 한 무리의 보안직원과 노노련 회원들이 맞서는 가운데

누군가 접이식 테이블을 들어 보안직원을 내리치는 장면이 담겨 있다.

“우리가 맞았어요. 우리 보안직원들, 다 세금 내는 선량한 이들입니다. 건달이나 양아치가 아닙니다.”

백화점 측은 단호하다.

“쾌적한 공원을 시민에게 제공하는 게 상식이고 시대정신이다.

이를 위한 노력은 10년이 걸리더라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노점상의 상식: 생계형은 놔둬라

“출근시간에 2시간 정도 김밥 파는 생계형 노점을 이렇게 사람 동원해가면서 막는 게 과연 상식입니까?”

박씨 부부는 오전 7시가 되기 전 신도림역에 나오고 9시 30분쯤 철수한다.

“백화점 영업시간은 10시30분부터라서 영업 방해도 아니에요.

원 어지럽힌다고 할까봐 철수할 때도 주변을 싹 정리하고 갑니다.”

노점상이 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박씨는 다른 장사를 했는데 경기가 나빠지면서 손해를 봤다.

그 와중에 아내 김씨가 위암 판정을 받고 위절제 수술을 받으면서 완전히 주저앉았다.

주변에서 김밥을 팔아보라고 해서,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공장에서 만든 김밥을 받아와 팔라고 하더라고요. 1000원에 팔아 300원 남습니다.

하지만 먹는 건데 너무 부실해서 도저히 못 팔겠더라고요.” 이후 직접 김밥을 싸기 시작했다.

-백화점 측에선 하루 100만원씩 번다고 한다.

“웃기는 소리다. 그럼 너도나도 여기 와서 김밥 팔지.

사실 몇몇 노점상들이 여기에 오긴 했었는데 생각만큼 장사가 잘 안 되니까,

한 사람 정도만 장사할 수 있는 정도니까 다들 며칠 만에 돌아갔다.”

박씨는 하루 200개 정도 만들어 판다고 했다.

하루 매출 30만원, 20일 일하면 600만원이다.

하지만 비가 오거나 궂은 날씨에는 김밥이 잘 안 팔린다.

실제 매출은 이보다 적다.

부부 두 사람이 매달려 번 수입이 250만∼300만원이라면 많은 것일까 적은 것일까?

게다가 보안직원들이 둘러싼 이후 매출이 반토막났다고 했다.

-아침 3시간 정도만 일한다. 여기서 장사 마친 뒤 다른 일하면 수입이 늘어날 것 같은데?

“그러고 싶어도 못 한다. 정리하고 집에 가면 10∼11시다. 네댓 시간 자고 나면 장보러 가야 한다.

밤 9시부터 밑반찬 만든다.

햄, 계란 썰고, 야채 볶고. 새벽 2∼3시부터 싸기 시작해

200개 만들면 어느새 6시가 되고. 그때부터 준비해서 나와야 한다.

정말 주중에는 쉴 틈이 거의 없다.”

-백화점은 예외를 허용하면 다른 노점상이 들어올 것을 걱정하고 있다.

“괜한 트집이다.

출근시간대 김밥 장사 외 다른 노점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리어카, 포장마차 같은 시설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시설이 들어오면 구청에서 당장 단속 나와 압수해간다.

포장마차 만들려면 800만원 드는데 그걸 뺏기는 리스크를 누가 감수하겠나.”

박씨는 자신들이 공원 미관을 해친다면,

테이블을 더 예쁘게 꾸며 미관을 해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해봤지만 효과는 없었다.

박씨는 D그룹 최고위층을 의심하고 있다.

최고위층의 의지가 없다면 이렇게까지 김밥 노점을 압박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정말 옹졸한 사람인 것 같다. 직원 동원해서 김밥 장사 말려 죽이려고 하다니….”

싸움은 시작됐고 이젠 물러설 수도 없는 상황이 됐다.

“이 일이 너무 힘들어서 관두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못 그런다.

내가 아무리 노점상이지만 이렇게 사람 무시하고 하는 경우가 세상에 어디 있나?”

어차피 더 물러날 곳도 없어 보였다.



당신의 상식은?

지역 관할인 구로구청, 구로경찰서는 아침마다 사람을 보내 1번 출구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중재 노력은 하지만 단속을 하지도, 그렇다고 백화점 보안직원을 철수시키지도 않고 있다.

한편의 손을 들어주기가 쉽지 않아서다.

구로구청은 해법을 상식에서 찾으려고 한다.

구청 관계자는 “사실 단속하면 쉽게 풀리겠죠.

노점상도 권리금 주고받고 땅장사 하는 조직형이 있는데, 그런 거면 우리도 가만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나온 사람들을 단속하는 게….

게다가 가로, 세로 1m 이하 크기의 노점상은 단속해봐야 과태료 10만원 미만이라 큰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면 생계형 노점상을 단속하지 않겠다고 공식화할 수 있겠느냐고 묻자 “그건 곤란하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현행 법규정상 무허가 노점상은 단속 대상이기 때문이다.

구청은 규정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울 수 있는 적정선을 찾느라 고심하고 있었다.

여론도 신경쓰는 눈치다.

시민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누군가는 “그냥 팔게 내버려두지 왜 사람 써서 길 막고 난리냐?” 하고,

다른 이는 “노점상 싹 치워버리지 가만히 지키고만 서 있느냐!”며 화를 낸다.

인근 한 주민은 “아침마다 이 꼴을 보는 게 더 짜증이다.

잘잘못을 떠나 도대체 우리가 왜 이런 싸움을 보면서 아침을 불쾌하게 시작해야 하느냐”고 따진다.

무허가 노점상과 단속권이 없는 백화점 모두 ‘상식’에 호소하며 싸움에 임하고 있다.
당신의 상식은 누구 손을 들어주겠습니까?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41 단원고 유가족대책위원회 대표의 기자회견 전문 운영자 2014-04-30 6061
140 지금 밀양시청 상황~ 운영자 2014-01-28 7566
139 밀양, 그저 눈물이 흐르는 곳. 운영자 2014-01-03 7535
138 탄 원 서 (밀양) file 운영자 2013-11-17 6860
137 “내란음모 조작, 제가 할께요~ 느낌 아니까~” 운영자 2013-09-08 7826
136 지금, 페이스북에서의 내란예비음모사건 운영자 2013-08-30 8022
135 월급 80% 공유, "욕심 버리고 행복 찾았다" / 스반홀름 마을공동체를 가다 운영자 2013-06-14 9588
134 한국역사의 특수성 / 허성도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의 강연 중 운영자 2013-06-08 7870
133 진보의 진실 (통합진보당 비례경선사태의 진실) 40분. 운영자 2012-12-13 7163
132 말기암 20대, 마지막 가족여행 도중 숨져 운영자 2012-06-17 13732
131 김일석의 탈핵후보 구자상 찬조연설 동영상 운영자 2012-04-10 7240
130 구자상의 에너지 민주주의와 김일석의 진보담론 운영자 2012-03-30 7676
129 구럼비 발파 시작, 강정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운영자 2012-03-09 7948
128 핵없는 세상을 위한 기도문 file 운영자 2012-03-04 7884
127 독일교육에 대해... 운영자 2012-02-22 7487
126 의대 교수· 병원 과장직 던지고 2009년 쪽방촌 무료병원으로 운영자 2012-02-03 8406
125 10.26 서울시장 선거부정 / 뉴스타파 제 1회 방송 운영자 2012-01-28 7443
124 박원순 서울시장, 결국 사고치다 file 운영자 2012-01-16 8598
» 신도림역 1번출구 김밥 전쟁 file [1] 운영자 2012-01-06 8684
122 '미국 스파이'가 털어놓는 BBK 이야기 운영자 2012-01-06 8664
121 YTN 돌발영상이 폐지된 이유 운영자 2012-01-02 7941
120 안철수 기부금으로 한국판 그라민 은행 설립 검토. 정유수 2011-11-30 8007
119 ISD는 중요분야 주권 포기 / 베이커 미 경제정책센터 소장 운영자 2011-11-26 7397
118 재일동포 형제간첩단 사건의 서승 선생 출판기념회 file 운영자 2011-11-24 8419
117 신동엽 창작상을 받게 된 시인 송경동의 수상소감문 file 운영자 2011-11-24 8481
116 이상사회를 향한 교육 / 핀란드 교육 운영자 2011-11-19 7924
115 CBS / 23억 기부하고 아내에게 3만원 빌려쓰는 남자 운영자 2011-11-03 7901
114 한미FTA와 이상한 샌드위치 : 위키리크스로 밝혀진 한미 FTA의 내밀한 진실 정유수 2011-10-31 10407
113 민주노동당 대표 국회 비교섭 단체 연설문 중 운영자 2011-10-20 7453
112 박원순 후보의 학력위조와 관련한 기사 하나 운영자 2011-10-17 8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