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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 기술자, 이근안의 가족사를 보며...

조회 수 9463 추천 수 0 2006.12.11 23:01:01
코털아찌 *.239.26.76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악행이 어떤 지경까지인가를 보여주었던 고문경찰 이근안...
그의 출소 뒷이야기를 옮겨실으며,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를 지탱하게 하였던 군부권력이 계속 집권하였더라면 지금쯤 권력의 중심에 있을 지도 모를 일.
그가 온전히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았다는 데에 다행스러움을 느끼지만
그를 감쌌던 당시 지휘계통의 많은 이들이 벌 받지 않고 여전히 잘 살고 있다 생각하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근안, 죄값을 치른 그의 마지막 삶이 부디 의미있기를 바라며 글을 옮겨본다...........운영자



그가 나왔다.
5공 시절 ‘고문 기술자’로 악명을 떨쳤던 전 경기도경 대공분실장 이근안이 지난 11월 7일 징역 7년의 형기를 마치고 경기도 여주교도소에서 출소했다.
11년의 도피생활과 7년의 수감생활을 거치는 동안 그의 가정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서울 용두동 자택 앞에서 만난 그의 부인 신옥영씨는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폐품 수거와 건물 청소로 고단한 삶을 꾸리고 있었다.

가장의 몰락과 함께 가족 역시 나락의 길

‘인간 백정’ ‘지옥에서 온 장의사’ ‘고문 대부’…. 지난 11월 7일 만기 출소한 이근안(68) 전 경감은 듣기만 해도 섬뜩한 별명을 여럿 가지고 있다. 그만큼 그는 1980년대 군사정권 시절 자타가 공인하는 ‘고문 기술자’로 통했다. 1970년 순경으로 경찰생활을 시작해 주로 대공 수사 분야에서 일한 이 전 경감은 민청학련 의장이던 김근태 현 열린우리당 의장을 고문한 혐의로 1988년 12월 수배됐고, 약 11년의 잠적 끝에 1999년 10월 검찰에 자수했다.

이후 7년형을 선고받고 여주교도소에서 복역한 그는 “사회에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며 “그 시대엔 애국인 줄 알고 했는데 지금 보니 역적이다. 세상사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는 말로 출소의 변을 대신했다.

1988년 이씨가 수배자 신세가 되면서부터 아내 신옥영씨(68)와 세 아들은 가장의 몰락과 더불어 나락의 길을 걸었다. 번듯한 직장에 다니던 큰아들과 둘째 아들은 아버지가 이근안이라는 사실이 사내에 알려지면서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뒀다. 특히 차남은 심한 당뇨병까지 얻어 더 이상 직장을 잡지 못했다. 이씨가 수배받을 때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셋째 아들은 경기도 파주의 모 부대에서 공병으로 근무하다 아버지가 자수하기 직전 제대했다.

결혼 초기에 미용실을 운영했던 아내 신씨는 가세가 기울자 집 근처에 3평 남짓하는 허름한 미용실을 다시 냈고 그 수입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미용실에서 시어머니의 조수 노릇을 하며 집안 살림을 맡았던 둘째 며느리는 10년이 넘도록 집에서 숨어 지내는 시아버지를 위해 시어머니와 교대로 점심을 차려주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수할 당시 이씨는 “효부인 둘째 며느리에게 특히 미안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고 한다.

어두운 역사의 한 축에서 권력의 하수인으로 호가호위(狐假虎威)했던 이근안 전 경감. 이제 칠순을 앞둔 그는 당뇨, 고혈압 등에 시달리고 있다. 출소 후의 심경을 듣기 위해 옛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주인이 바뀐 지 오래였다. 동네 주민들에 따르면 그간 그의 가족은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운 생활을 해왔다고 한다.

부인이 미용실을 운영해 근근이 생계를 꾸렸지만 손님이 거의 없어 유지가 어려울 정도였고, 큰아들도 사업이 잘 안 돼 가족과 왕래가 끊어지다시피 했다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신씨가 동네를 다니며 폐지 줍는 모습을 봤다는 주민도 몇 있었다. 지병을 앓던 둘째 아들은 몇 해 전 숨졌다. 수감중 자식을 잃은 이씨는 출소 당일 취재진에게 “자식의 시신이라도 내 손으로 묻어주고 싶었는데 그게 허락이 안 됐다”며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이씨 가족을 기억하는 이웃들은 조금씩 다른 입장을 보였다. 어떤 이는 “가장이 저지른 일인데 가족이 무슨 죄가 있느냐, 고생하는 모습이 안됐다”고 했고 또 어떤 이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 때문에 피눈물을 흘렸는데 그 가족들을 동정하냐”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법이 내린 죄값을 치르고 다시 세상에 나왔지만 20년 가까운 가장의 부재는 부인 신씨를 비롯한 가족 모두에게 고스란히 삶의 무게로 남은 듯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부인 신씨가 미용실에서 생활하며 영업을 계속 했다는 제보를 듣고 미용실을 찾아가 봤다. 4층짜리 벽돌 건물 1층에 있던 미용실 자리엔 대신 지물포가 들어서 있었다. 미용실에는 평소 손님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지난 6월에 가게를 냈다는 지물포 주인은 자기가 들어오기 전에도 약 1년 간 가게가 비어 있었다고 말했다.

미용실 간판은 그대로 있었지만 신씨가 가게를 그만둔 지는 꽤 된 셈이다. 동네에서 종종 모습을 봤다는 이웃은 몇 있었지만 신씨 가족이 어디에서 사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며칠에 걸친 수소문 끝에 신씨가 동네 한 건물에서 청소부로 일하고 있고, 그 건물에서 500m 떨어진 음식점 건물 2층에 세 들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지난 11월 7일, 7년의 형기를 마치고 여주교도소를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이근안 전경감(사진 위). 1999년 10월 검찰에 자수하고 구속되던 당시의 모습.
신씨가 살고 있는 집은 대로변에 인접한 작은 골목 안에 있었다. 허름한 2층 건물의 1층에는 한식당이 있고 식당 옆에 붙은 자그마한 대문이 신씨네 집으로 통하는 출입문이었다. 신씨가 이 집에서 지낸 지는 2년 정도 됐지만 이웃들은 신씨와 대화를 나눈 적이 거의 없는 모양이었다. 여전히 둘째 며느리와 함께 사는 듯했고 이따금 막내 며느리가 어린 손자를 데리고 들른다고 했다. 그러나 출소한 이 전 경감을 동네에서 봤다는 사람은 없었다.

부인 신씨를 만난 건 11월 18일 오전 9시경이었다. 빨간색 점퍼 차림의 그는 연배에 비해 젊어 보이는 편이었다. 폐지를 담은 작은 수레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던 그는 기자가 신분을 밝히고 인터뷰를 요청하자 “아무 할 말이 없다”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난 99년 남편이 자수했을 당시 신씨는 취재진에게 “일밖에 모른 남편이 잘못한 게 뭐냐, 남편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모든 것을 남편에게 뒤집어씌우려 한다”고 항변했지만 이제는 극도로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이 전 경감의 건강 상태와 근황을 묻자 신씨는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며 계속해서 답변을 회피했다. 고생이 많았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을 건네자 잠시 침묵한 그녀는 이내 결심한 듯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으로 들어가버렸다. 전화를 걸어 다시 한번 정중하게 인터뷰를 요청해봤지만 역시 묵묵부답이었다. 대문 앞에 둔 작은 수레에는 빈 종이상자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여생을 참회하며 신앙생활 하겠다고 밝혀

이근안 전 경감은 재야 인사들을 상대로 한 갖가지 고문 수법, 거짓말처럼 사라졌던 10년 간의 잠적과 전격적인 자수, 그리고 7년 간의 수감생활과 최근의 출소로 몇 차례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장본인이다. 그는 1970년 경찰생활을 시작한 이후 줄곧 대공분야에서 일하며 특진으로만 고속승진했다. ‘이근안이 없으면 수사가 안 된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재직기간 동안 청룡봉사상 등 모두 16차례의 표창을 받았는데 여기에는 ‘간첩 검거 유공’이 4회나 포함돼 있다. 22년 동안 간첩 누명을 쓰고 살다가 지난해 7월 무죄 선고를 받은 함주명씨 역시 이 전 경감의 고문에 못 이겨 간첩 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지난 1983년 서울 종로구 기독교회관 앞길을 걷다가 납치되듯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간 함씨는 이 전 경감으로부터 ‘북한의 지령을 받아 30년 동안 남파간첩으로 활동했다’는 내용의 진술을 강요받고 악몽과 같은 고문에 시달렸다.

몽둥이로 온몸을 때리는 것은 기본이고, ‘칠성판’에 몸을 묶고 얼굴에 수건을 뒤집어씌운 다음 샤워기를 들이대 숨을 못 쉬게 하는 물고문, 새끼발가락에 전깃줄을 감아 전류를 흘려보내는 전기고문이 두 달 가까이 이어졌다. 고정간첩으로 활동해왔다는 거짓 자백을 하고 나서야 고문이 멈춰졌다고 한다. 결국 함씨는 지난 84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무기징역이 확정됐고 98년 특별가석방으로 풀려나기까지 16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이 전 경감은 연행자들 앞에서 한 손으로 사과를 으깨 보이면서 “내가 손대면 입을 열게 돼 있다”는 등 위협적인 말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기고문, 물고문, 관절 뽑기, 날개 꺾기, 집단 구타, 볼펜심 신문, 통닭구이 등 각종 고문에 통달한 그는 종종 다른 기관에까지 ‘고문 출장’을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1980년대 ‘학림사건’으로 그에게 고문을 당한 경험이 있는 열린우리당 민병두 의원은 한 기고문에서 “고문 기술자로 악명 높은 이근안은 「선데이서울」을 보면서 전기고문의 볼트수를 올렸다 내렸다”며 “나 역시 온갖 구타와 잠 안 재우기 등의 고문을 당하고 동료들의 소재지를 댔다”고 고백했다. 또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은 “그가 고문을 하면서 ‘지금은 네가 당하고, 민주화되면 내가 그 고문대 위에 서줄 테니 그때 가서 복수하라’고 했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재직 중이던 김근태 의장은 올해 초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근안 전 경감에 대한 심정을 솔직하게 토로한 적이 있다. 김 의장이 여주교도소에 복역 중이던 이근안 전 경감을 면회한 직후였다. 당시 김 의장은 여주교도소에 수감된 후배를 면회하기로 약속한 상태였고 그때까지만 해도 이근안 전 경감의 존재는 미처 감안하지 못했다고 한다. 면회를 앞두고 그곳에 이 전 경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돼 갈등에 빠졌다는 것이다.

이씨가 감옥에서 간증을 하며 용서를 빌었다는 말을 들었지만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면회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후배와의 약속을 어길 수 없었고 이씨와의 만남이 또 다른 운명이구나 싶어 면회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김 의장은 당시 면회실에서 만난 이씨가 무척 작아 보이더라고 했다. 자신에게 군림하며 고문할 때는 항공모함처럼 커 보였는데 신세가 역전되니 이상할 정도로 작아 보이더라는 것이다.

눈 감을 때까지 용서를 구한다고 말하는 그를 보면서 김 의장의 마음에는 과연 진심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고 한다. 상처가 깊었던 탓인지, 무릎을 끓고 용서를 구하는데도 마음에 와 닿지를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와의 만남 직후 한 목사님의 조언을 듣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 사람의 진심이 무엇인지 따질 권리는 신에게만 있는 것이므로 신의 권리에 개입하기보다는 그 사람이 구하는 용서의 말을 마음으로 받아들여야겠다고 마음먹었다는 것이다. 이씨가 출소한 뒤 김 의장은 공식 석상에서 “그가 여생을 건강하게 지내길 바란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근안 전 경감은 10여 년간 잠적생활을 하는 동안 성경을 탐독하며 기독교에 귀의했다고 알려졌다. 그는 출소 후에도 신앙생활에 몰두하겠다고 밝혔다. 자신은 피해자 당사자는 물론 그 가족들에게도 죄인이기 때문에 회개의 삶을 신앙에서 찾겠다고 했다. 무자비한 고문으로 인권을 유린한 그의 작죄는 두말할 나위 없이 크다.

그러나 하수인에 불과한 이씨가 법의 심판을 받을 동안 그에게 고문을 지시하고 방조한 배후 세력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채 버젓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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