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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지음 .돌베개>

조회 수 10352 추천 수 0 2011.07.08 08:23:41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지음 .돌베개>

 

                           금이정 선생님의 글



책은 창(窓)이다.
창은 안과 밖을 서로 비춘다.

그것은 ‘언어’라는 빛과 공기로 나를 세상과 소통하게 한다.
세상엔 책 수만큼이나 많은 창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삼십대 초반에야 겨우 알았다.
그러므로 그때까지 나는 밖은 물론 나의 안조차 캄캄했었다.



어느 날 집 가까이 도서관이 생겼다.
무엇보다 책을 무료로 실컷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도시로 온 것을 처음으로 기뻐했다.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책 사이를 누볐다.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그야말로 잡식성의 왕성한 흡수였다.
그러던 중 이 책을 만났다.



무언가 다르다는 느낌이 단박에 왔다.
분명 질(質)이 달랐다 .
이 책은 창이 아니라 눈(眼)이었다.
그 눈은 반짝였고, 맑았고, 날카로웠다.
그러나 무엇보다 따뜻했다.
안으로는 서슬 푸르도록 엄정하여 정갈하고 단아한 정신의 뼈대를 순백하게 키운 눈이었고,
밖으로는 가장 낮은 곳, 가장 상처받은 사람들 속에서
시대와 사회를 겸허하게 배우며, 보듬으며, 섬세한 긍휼을 지어내는 눈이었다.
그것은 넓고 높은 시공을 향해 단단하고 투명한 언어를 보석처럼 쏟아내고 있었다.
그것은 순금같이 반짝이는 사색과 고뇌의 결정체였다.
눈이 부시어 몇 번이나 책장을 덮었다.



이 책은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20년 20일을 감옥에서 살아야 했던 한 무기수의 사색일지이며 편지모음이다.
사람의 정신에도 임계점이란 게 있는 것일까?
몸이 갇히면 마음마저 위축되는 법인데, 정신의 밀도가 얼마쯤 되어야
이처럼 척박한 곳에서도 뿌리와 가지를 왕성하게 뻗을 수 있는 것일까?



저자는 '한 그루 나무가 되라고 한다면 나는 산봉우리의 낙락장송보다 수많은 나무들이 합창하는 숲 속에 서고 싶다'라고 하였다.
하지만 이 책은 아무리 봐도 높은 산정에 홀로 우뚝 선 나무다.
'동토에 발목 박고 풍설에 팔 벌리고 여전히 봄을 키우고'있는 나무다.
나무는 지금도 순금의 열매들을 끊임없이 생산하고 있다.
열매를 분양 받은 사람들은 그것을 저마다의 터전에 심고 가꿀 것이다.
그리하여 풍성하고 아름다운 숲을 만들어 언젠가는 '나무들의 합창'을 이룰 것이다.
이 책은 그러므로 현재진행형의 우뚝한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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