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BOK00010038747YE
가장왼쪽에서가장아래쪽까지B급좌파김규항이말하는이시대의진보와영
카테고리 정치/사회 > 정치/외교 > 정치일반 > 정치비평에세이
지은이 김규항 (알마, 2010년)
상세보기


사람이라는 게 인생이 너무 희망차면 좋지 않은 거 같아요. 좀 비관적인 데가 있어야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많이 좌절하거나 그렇게 되지 않더라고. 비관적인 정서가 있으면 훨씬 낙관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어요. 요즘 한국 사람들이 살기 힘들어 하는 것도 비관적인 정서가 길러지지 않아서 그래요. 사람들이 경제개발 독재 시대에 워낙 세뇌가 되었어요. 인생에 대단한 의미를 두고 보다 밝은 미래를 위해 늘 열심히 노력하고 하여튼 좀 공격적으로 살아가는 걸 미덕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그게 바로 인생을 끊임없이 고단하게 만듭니다. 만날 '보다 나은 미래' 만 생각하지 '오늘' 이 없어요. 인생은 오늘의 연속이잖아요.
육체적 폭력이든 정신적 폭력이든 그런 폭력 구조 속에서 자신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태도, 목숨을 걸고 존엄을 지키려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진보적으로 보이는데 어느 정도 선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치명적인 반동이라고 보는 거죠.
노무현 추모와 미화에 매몰되어 이명박 대통령을 포함한 훨씬 더 광범위한 구조인 지배 체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것, 이런 것들이 가장 반동적인 현상이죠.



선거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건 우리 사회가 보수화도 우경화도 아닌 민영화 상태라는 거다.
한국에서 정치는 일단 사라진겁니다. 한국인들은 더 이상 대통령을 뽑는 게 아니라 사장을 뽑는 겁니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신자유주의 정권은 서민 대중들의 삶을 더 고단하게 만들었어요. 그런데 재밌는 것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대중들은 좌파라고 생각하니까 그게 좌파정치의 결과라 보는 거죠. 이젠 정의고 진보고 다 필요없다, 먹고 사는 게 문제다. 이러는 거죠. 이명박이라는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라 생각해서 뽑은 게 아닙니다. 대통령은 그가 인격적으로,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든 없든 간에 대한민국이라는 주식회사를 잘 운영할 수만 있으면 된다는 식이죠.

상처는 마음에 옹이를 만들어요. 사회적 행동이나 운동에서 그 옹이진 마음이 작용하면 운동의 건강성이나 대의를 해치기도 합니다. 일부에 국한된 이야기지만 여성운동하는 분들 가운데는 남성에 대한 무조건적인 증오심을 갖고 있는 분도 있고, 장애우운동하는 분들 중에서도 합리적인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분노로 똘똘 뭉친 분도 있고, 어느 운동이나 그런 게 있죠. 그래서 운동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기도든 명상이든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습관화하는 게 여러모로 좋다고 생각합니다.



설거지 거리가 있으면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이 하면 됩니다. 우리 집에서 애들끼리 '어제는 내가 설거지 했으니까 오늘은 네가해' 이런 소리하면 혼납니다. 매우 공평한 주장이긴 하지만 한 번이라도 손해를 안 보겠다는 긴장이 담겨 있잖아요. 그냥 '내가 한 번 더 하면 다른 사람이 편하고 그게 좋다' 이런 마음을 가져야만 평화로울 수 있어요.

사실 정파 싸움에는 정치적 의견의 갈등도 있지만 그런 인간적인 갈등이 더 주요하게 작동해요. 그들이 세상을 뒤집고 권력을 잡은 다음에는 어떻게 되겠어요? 그러니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합니다. 영성 없는 혁명가들이 이룰 세상은 위험할 수 밖에 없어요. 하루에 30분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 하루에 30분도 자기를 되돌아보지 않는 사람들이 성난 얼굴로 만드는 세상을 상상해보세요. 생각만해도 아찔하지 않나요?



그런데 지성이라는 게 뭔가요? 김수영의 말을 빌리면 '세계의 문제를 제 문제처럼 생각하는 사람' 그게 바로 지성이죠. 현 정권을 보고 있으면 환장하겠다는 심정은 이해해요. 나라고 안그렇겠어요? 그런데 이명박 정권에게 당하기 전부터 김대중 정권에게 당하고 노무현 정권에게 당해온 사람들의 입장을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이명박 정권만 욕하는 것'과 '이명박 정권을 욕하는 것'은 전혀 다르죠. 이명박 정권만 욕하게 되면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자들은 숭고한 민주주의의 투사로 부각될 수 밖에 없어요. 그건 무슨 말이냐면, 신자유주의 체제가 이명박 정권과 같은 무식한 정권을 잃는다 해도 다시 김대중이나 노무현 수준의 정권으로 안전하게 회귀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일입니다. 10년의 경험을 송두리째 무위로 돌리는 거죠.


오늘 우리의 정체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노무현 추모인파 500만일까요, 그즈음 용산참사 6개월 집회에 모인 500명일까요? 앞의 것은 어디로 되쏠릴지 모르는 인파고, 뒤의 것은 진짜 인파죠. 500명은 참 너무했죠? 무슨 대단한 사회의식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세상에 이렇게 야박한 일이 어디있어요. 게다가 그 500명 중에 그냥 시민들은 거의 없었어요. 다 운동권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죠.


그는 '내 밖의 적과 싸우는 일을 혁명이라 하고, 내 안의 적과 싸우는 일을 영성' 이라 말하면서 '역사 속에서 혁명과 영성의 편향은 번갈아 나타난다' 고 지적한다. 그 때문에 '하루에 30분도 기도하지 않는 혁명가가 만들 세상은 위험하며 혁명을 도외시하는 영성가가 얻을 수 있는 건 제 심리적 평온뿐' 이라고 말한다.
예수는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내면의 변혁을 추구하는 사람들 모두가 봉착한 한계에 대해 비전을 제시한 인물입니다. 다시 말해 오늘 날 인류사회의 진보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인물이에요. 

생명, 평화쪽에 가서는 천상 반대편 사람처럼 말합니다. '사회변혁 없는 마음의 안식이 무슨 소용이냐?' 하는 식이죠. 반대로 변혁운동이나 급진적인 좌파들을 보면 영성의 결핍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가에 대해 절감하죠. 세상을 바꾸자는 것은 사람들이 더 자유롭고 충만하게 살자는 얘긴데, 정작 운동하는 사람들이 너무 사납고 강퍅하고 메말라 있어요. 레디앙 같은 매체의 덧글들을 보세요. 좌파라는 사람들의 내면에 지옥이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잖아요 . 물론 인터넷 매체의 덧글이라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만약에 그런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을 장악하고 운영한다면 서로 다 죽이고 말겠죠.



치유라고 하면 조용하고 온화한 표정만 떠올리는데요. 그건 상품으로서의 치유조. 진정한 치유는 실은 매우 격렬한 과정입니다. 내 안의 것들을 모조리 뒤집어 바로잡는 거니까요.
우리는 어떤 가치에 수긍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고 늘 말합니다. 그런 걸 ' 이상주의'라고 말할 수 있는데요. 진정한 이상주의는 우리 삶의 외부에 있는, 혹은 미래에 있는 어떤 게 아닙니다. 이상주의의 편린들이 이미 우리 안에 있습니다. 사람이 사는 모습에서 찾을 수 있어요.

내가 학교 다닐 때는 해방신학 전공한 선생님에게 '저항으로서의 폭력은 정당하다' 고 배웠던 기억이 나요. 나는 그것과 비슷하면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겁니다. 폭력, 비폭력을 말하기 전에 '현장성' 이 중요하다는 거죠. 현장을 기반으로 말해야 한다.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의 처지에서, 혹은 폭력에 노출된 그 상황 속에서 말해야 한다는 겁니다. 서재에서, 토론장에서, 책 속에서 '제국주의와 테러리즘은 둘 다 나쁘다'는 식으로 말한다면 그건 잘못이죠. 제국주의의 미사일에 제 아이가 찢어진 상황에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존중해야겠죠.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1년에 뺨 한대 맞을 일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분노한다는 건 잘잘못을 가리고 진실을 밝힌다는 거에요. 그래서 인정과 사과가 따른다는 겁니다. 그 다음에 용서할 수 있습니다. 나는 분노할 줄 모르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문제는 용서라는 말이 흔히 분노조차 하지 말라는 뜻으로 사용된다는 거죠. 고매한 얼굴로 그런 싸구려 용서를 설파하는 인간들을 보면 정말 화가 납니다.



'회개하라'는 말은 교회다니라는 말이 아니에요. '돌아섬'이라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살던 방식을 전복시키고 새롭게 살라는 말이죠. 새롭게 살라는 말은 자칫 어떤 즐거움 같은 걸 절제하고 금욕적인 생활을 하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죠? 그래서 오해가 생겨나는데요. 그건 즐거움을 바꾸라는 말입니다. 어제까진 남보다 더 많이 갖고 앞서고 대개의 사람들과 격차가 벌어지면 벌어질수록 즐겁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그게 전혀 즐겁지 않은 사람으로 바뀌는 거죠. 덜 가진 사람을 보면 내 욕심 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아 민망하고 뒤처진 사람들이 눈에 밟혀 불편하고 그런 격차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연대하고 그들의 빼앗긴 권리와 인권을 위해 함께 싸우는 게 훨씬 마음 편하고 즐거워지는 거죠. 그게 바로 회개입니다. 예수가 말한 하느님나라 운동이든 혁명이든 모든 진지한 사회적 태도나 노력에는 그 가장 첫 순서에 회개가 있어야 해요. 그게 없으면 너무 힘들어요.

경쟁이 나쁘다, 나쁘지 않다를 떠나서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이게 실은 경쟁이 아니라는 겁니다. 경쟁이라는 건 유리하고 불리한 차이는 있겠지만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걸 전제로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한국 사회는 이미 그런 상태가 아닙니다.

자식이 노동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당연히 근본적으로 콤플렉스를 갖고 살아갈 수 밖에 없어요. 노동자라서 불행한 게 아니라 죄가 없는데도 콤플렉스를 갖고 살아간다는 게 불행한 거죠.

진짜 엘리트는 근거리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존경받는 사람이죠. 곤란한 일도 지혜롭게 해결책을 제시하는 현명한 사람, 슬픔에 빠진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따뜻한 가슴을 지닌 사람, 복잡하고 간교한 자본의 체제를 훤히 들여다보는 맑은 눈을 가진 사람,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소신과 신념을 '그래도 현실이...' 따위의 말로 회피하지 않는 강건한 사람, 그런 사람이죠.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4 청소년을 위한 인생노트, '노년의 지혜' / 김노환 file 운영자 2014-04-01 6630
23 중 고교 학부모가 읽으면 어떨까 싶은 책 한 권 운영자 2014-02-21 6117
22 김일석의 다섯 번째 詩 이야기 '살아보니 알겠어' file 운영자 2012-03-27 13661
21 이반 일리히의 유언 / 종교와 시대를 횡단한 르네상스적 자유인 file 운영자 2012-02-02 11936
20 에른스트 마이어 / 진화란 무엇인가 운영자 2011-11-07 12198
19 황성수 / 현미밥 채식 (페가수스) 운영자 2011-10-04 9884
18 전태일 평전 / 조영래(돌베개) file 운영자 2011-08-03 11317
17 스테판 에셀 / 분노하라(돌베개) 운영자 2011-08-01 9097
16 송경동 /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창비시선) file 운영자 2011-08-01 9721
15 소금꽃나무 / 김진숙 (후마니타스 刊) file 운영자 2011-07-27 8940
14 부산지역 노숙인 자서전 / 길모퉁이에 비켜선 사람들 운영자 2011-07-27 8688
13 윤여탁의 평론 / 한 전위 노동자의 체험과 꿈 (박노해, 노동의 새벽) file 운영자 2011-07-22 9883
12 김일석 시집 '5억년을 걸어야 닿는 별' file 운영자 2011-07-08 8734
11 김일석 시집 '지독한 연민 혹은 사랑' file 운영자 2011-07-08 9211
10 김일석 시집 '상념의 바다' file 운영자 2011-07-08 8402
9 김일석 낚시 명상시집 / 오늘도 빌딩숲 속에서 난 바다를 꿈꾼다 file 운영자 2011-07-08 8905
»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 / B급좌파 김규항이 말하는 이 시대의 진보와 영 운영자 2011-07-08 10997
7 오마이뉴스, 예스24 공동 진행 '지난 10년 최고의 책'에 선정된 10권의 책. 운영자 2011-07-08 10870
6 김일석 / Montessori Praxis / 지리 문화, 생명.과학. 역사교육의 이론과 실천 file 운영자 2011-07-08 10682
5 김일석 / Montessori Praxis / 감각, 수학, 언어교육의 이론과 실천 file 운영자 2011-07-08 11652
4 체 게바라의 시적 성정 확인하는 <먼 저편> 운영자 2011-07-08 9129
3 불량하게 읽는 김규항의 '예수전' (돌베개) 운영자 2011-07-08 9147
2 배달호 열사 평전 (부울경 열사회) 운영자 2011-07-08 8184
1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지음 .돌베개> 운영자 2011-07-08 10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