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한 전위 노동자의 체험과 꿈 --- 윤여탁 (서울대 교수) 

 

 

노동의 새벽     

 

 

다음 글은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풀빛, 1984)에 대하여 ≪시와 시학≫ (1995. 봄 호)에 윤여탁 교수가 기재한 평론입니다.

 

Ⅰ.
1980년대 초반은 보통 시의 시대라고 한다. 그리고 중후반은 노동 문학으로 대표되는 민중 문학의 도도한 흐름이 있었던 시기이다. 이런 지난 시대에 대한 평가의 한 가운데 놓인 시집이 있다. 그 시집이 지금 내가 읽어가고 있는 박노해의 시집 <노동의 새벽>이다.

지금부터 10여년 전 그 시집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무엇으로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을 받았다. 아울러 그 동안 잊고 살았던 여러 기억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예를 들면 구로 공단 옆 뚝방의 벌집에서 한 착한 노동자인 삼촌, 재수생이었던 동생과 같이 했던 자취 시절. 그리고 이런 우리의 서울 생활을 보고 가슴아파하시다가 돌아가신 할머니에 대한 기억 등이다.

또 학교를 졸업하고 산업체 특별 학급의 담임으로 부임한 신출내기 중학교 선생님이 겪은 기억도 되살아났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오후 다섯 시까지 일을 하다가, 여섯 시까지 학교에 왔던(결석일수보다 등교일수가 조금 많았던) 얼굴에 핏기조차 없는 학생들의 얼굴. 풋내기 총각 선생님과 연애하자고 할 나이의 '말만한 처녀'인 중학생 옥자, 정희 ......

제도 교육의 틀 속에서 잘 길러진 시골뜨기였던 나는 서울에 와서 많은 것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이런 삶을 살기보다는 이런 서울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사람이었다. 비록 짧은 기간이나마 이런 체험들은 내게 이 시집을 읽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많은 기억들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이런 생각들을 다시 떠올리면서 나는 이 시집을 읽고 있다. 그러면서 한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 어떤 목표를 세우고, 이를 위하여 목숨을 바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 중의 하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마 우리 자신들이 맡은 일에 대해 애정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도 우리들의 일이 행복한 일이라고 스스로가 자위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박노해 시인의 삶은, 세속적인 의미의 행복과는 거리가 있지만 역시 행복한 사람 중의 하나다. 1956년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으며, 상업학교를 졸업하고도 산업전사의 길을 택했던 시인이자 전위 노동 운동가. 또 혁명적인 사상을 소유했다는 이유 때문에 영어(囹圄)의 몸이 된 사상가. 박노해는 이처럼 평범하지 않은 이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군사독재의 서슬이 퍼렇던 1983년 <시와 경제> 2집에 '시다의 꿈' 외 6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이미 우리 사회에는 1970년대 전태일과 같은 전위 노동자가 있었고, 유동우의 <어느 돌맹이의 외침>도 있었다. 그러나 민중의 요구는 여전히 묵살되는 상황이었으며, 노동 현장의 외침은 불온한 것으로까지 치부되던 때이다.

더구나 반민중적이고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잡은 당시의 신군부는 철저하게 이런 노동자와 민중의 요구를 탄압하고 있었다. 이런 1980년대 초반에 박노해는 이 사회의 공인(公人)이 되었다. 이 후 <노동의 새벽>(풀빛, 1984), <머리띠를 묶으며>(미래사, 1989), <참된 시작>(창작과 비평사, 1991) 등의 시집과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노동문학사, 1989)와 같은 산문집을 간행했으며, 1991년 "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으로 구속되어 복역하였다.

 

 

204.jpg

 

 

 노동의 새벽 초판본 (풀빛)

 

 

Ⅱ.
특히 <노동의 새벽>은 얼굴 없는 시인이었던 그를 일약 1980년대 대표적인 시인의 한 사람으로 올려놓았다. 특히 광주민중항쟁 이후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민중 세력의 성장과 그 외침을 이 시집은 전달하고 있다. 억눌려 살기만 했던 민중들의 삶의 모습과 그들의 요구가 적극적인 문학적 형상으로 표출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이 시집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비인간적인 조건에 묶여 있는 노동자들의 고뇌와 꿈을 노동자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함으로써 우리 시의 새로운 가능성"(최원식, '노동자와 농민')을 보여주었으며, 운동의 구체성을 확보하지 못했던 이전 시기에 비하여 "노동자로서의 자기 인식, 현실 인식, 상호 인식을 온전히 달성"(신승엽, '노동문학의 현단계')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평가가 지금도 유효한지는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는 1980년대 중후반에 활발히 창작된 노동 문학이 민족 문학 속에서 정당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또 1980년대 후반 우리 비평사를 뜨겁게 달구었던 민족 문학 주체논쟁을 촉발하는 계기도 제공하였다.

여기서는 이런 그의 시 세계를 <노동의 새벽>이라는 시집을 중심으로 살피기로 한다.  우선 그의 시 세계는 1980년대라는 특수한 현실 속에 처한 노동 현장에 대한 충실한 보고서의 성격을 띄고 있다. 열악한 자본과 빈약한 천연 자원 위에서 경제 발전을 이룩하려 했던 우리의 현실은, 노동자의 땀과 피를 요구했다. 그리고 그 대가를 지불하고서야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우리 사회의 희생양 중의 하나였던 노동자. 이 노동자로 대표되는 민중들의 삶의 모습이 시집에는 집약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리고 이 보고서의 진솔함이 모든 독자들(노동자, 농민, 소시민, 학생)에게 진한 감동으로 와 닿았다. 이를 통해 산업화의 양지 반대쪽에 있는 그늘에서 자라고 있는 잡초 같은 삶의 모습에 우리의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

 

 

시집의 표제시이기도 '노동의 새벽'은 이런 노동자의 삶을 특히 잘 나타내고 있다. 세 그릇의 짠밤으로 진이 빠진 노동자들은 야간 작업을 하고 나와서 새벽 공복(空腹)에 소주를 마실 수밖에 없는 인생이다. 야간 작업, 철야 특근, 휴일 특근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현실. 그리고 이렇게 일해도 그들은 여전히 밑바닥 인생길을 걷고 있는 "돌이"와 "공순이"를 면할 수는 없었다.  

또 주민등록을 갱신하려고 동회에 갔다가 닳아 없어진 지문을 부르고 있는 '지문을 부른다'나 한 여성 노동자가 남성들에게 짓밟힌 삶의 역경을 극복하고 새롭게 태어나는 여성상을 그린 '남성 편력기', 가난한 노동자 가족의 사랑을 노래한 '이불을 꼬매면서', 전자 회사에 다니면서도 어린 동생의 영어 공부를 위해 카세트 하나 사주지 못하는 여성 노동자를 삶인 '영어회화' 등에도 우리의 노동 현실의 어두운 면이 사실적으로 나타나 있다.

프레스에 잘린 동료 노동자의 손을 묻고 있는 '손무덤'을 보자.

 

    올 어린이날만은
    안사람과 아들놈 손목 잡고
    어린이 대공원에라도 가야겠다며
    은하수를 빨며 웃던 정형의
    손목이 날아갔다

    작업복을 입었다고
    사장님 그라나다 승용차도
    공장장님 로얄살롱도
    부장님 스텔라도 태워 주지 않아
    한참 피를 흘린 후에
    타이탄 짐칸에 앉아 병원을 갔다


                                  -- '손무덤'의 부분

     

36살 가장의 소박한 꿈과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산재의 희생양이 된 우리의 노동 현실이 자본가나 있는 자와의 대비를 통하여 잘 나타나고 있다.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접을 바라는 노동자의 요구는 무참히 짓밟히고 있었다. 그리고 눈매가 서글한 아내와 초롱한 아들을 둔 노동자와 그들의 피의 대가로 얻어진 고급 승용차가 이런 현실을 잘 보여 준다.

그러나 이 시의 시적 화자는 산재 관계 책을 구하려 종로의 큰 서점을 들렸지만 구할 수 없는 현실에 봉착한다. 오히려 자신들과는 다른 번화한 봄날의 종로 거리에서 자신들의 비참함만을 확인한다. 미국으로 대표되는 제국주의와 프로 야구로 대표되는 독재 정권의 우민화(愚民化) 정책의 실상을 목격하게 된다.

이런 노동자의 현실 인식은 박노해의 시에 절실하게 형상화된다. 그러나 이제 노동자는 이렇게 불합리한 현실을 알아차리는 데 머물지 않는다. 그는 이 현실 인식을 통하여 새로운 각성(覺醒)에 이르고 있다. 자신들이 소외되고 불평등한 대접을 받고 있음을 인식하고, 자신들의 삶에 대한 사랑과 적대 세력에 대한 분노를 노래한다. 바로 이 점이 이전의 노동 문학과 크게 구별되는 점이기도 하다.

 

    선진조국의 종로거리를
    나는 ET가 되어
    얼나간 미친 놈처럼 헤매이다
    일당 4,800원짜리 노동자로 돌아와
    연장노동 도장을 찍는다

    내 품속의 정형 손은
    싸늘히 식어 푸르뎅뎅하고
    우리는 손을 소주에 씻어 들고
    양지바른 공장 담벼락 밑에 묻는다
    노동자의 피땀 위에서
    번영의 조국을 향락하는 누런 착취의 손들을
    일 안하고 놀고먹는 하얀 손들을
    묻는다
    프레스로 싹둑싹둑 짓짤라
    원한의 눈물로 묻는다
    일하는 손들이
    기쁨의 손짓으로 살아날 때까지
    묻고 또 묻는다


                         -- '손무덤'의 부분

     

이처럼 노동 현장의 보고서는 이제 새롭게 깨어나는 노동자의 정신과 외침을 노래하기에 이른다. 일하는 사람들의 세상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으로 형상화되고 있기도 하다. 개인적인 차원의 희망이나 한풀이가 아니라, 진정한 노동자의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집단의 의지가 표현되고 있다. 노동자들이 '기쁨의 손짓'을 할 수 있는 사회에 대한 간절한 바램. 이것이 박노해의 시가 꿈꾸었던 세상이다.

 

 

 

Ⅲ.
이제 이런 박노해 시가 가지고 있는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를 형상화의 방법 측면에서 살피기로 하자. 그의 시 대부분은 서정 단시와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쉽게 읽힌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노동의 새벽>에 실린 시들은 긴 사설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 형식의 전통을 많은 부분에서 차용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진 형식상의 특징은 동일한 시구나 비슷한 구조를 지닌 시행을 반복하거나 대구(對句)로 표현하고 있다. 즉 반복이나 대구를 통해 나름의 시적 운율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비교적 긴 내용을 전달하면서도 빠른 호흡을 지닐 수 있었다. 이를 위해 그의 시는 짧은 시행을 반복적으로 구사하고 있다.

이런 형식적 모색은 '노동의 새벽'에서 보이는 방식으로, 이미 신동엽, 김지하와 같은 선배 시인들의 시 전통에 맥이 닿아 있다.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 / 이러다간 끝내 못가지"나 "오래 목사도 / 끝내 못가도", "우리들의 사랑 / 우리들의 분노"(윤여탁, '노동 그리고 참된 시작')와 같은 예에서 이런 형식 실험을 찾을 수 있다.

또 그의 시에는 긴 사설을 주워섬기는 판소리 사설과 같은 가락과 표현을 계승하고 있다. 마치 판소리를 부르는 광대가 내용 전달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비슷한 표현(formula)을 끊임없이 동원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형식 역시 운율 의식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남도적(南道的) 판소리의 가락에 얹혀져서 이야기가 전달된다.(특히 풍자시로 실험되고 있는 후기의 '시사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리고 자본가나 있는 자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내용으로 하는 시들에서 이런 방식은 널리 쓰인다. 그의 많은 시들이 현실에 대한 비판과 폭로를 통해 우리의 노동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여기서는 풍자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다음 시를 보자.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당신이 이뻐서가 아니다
    젖은 손이 애처로와서가 아니다
    이쁜 걸로야 TV 탈랜트 따를 수 없고
    세련미로야 종로거리 여자를 견줄 수 없고
    고상하고 귀티나는 지성미로야 여대생년들 쳐다볼 수도 없겠지
    잠자리에서 끝내주는 것은 588 여성동지 발뒤꿈치도 안차고
    써비스로야 식모보단 못하지
    음식솜씨 꽃꽂이야 학원강사 따르것나
    그래도 나는 당신이 오지게 좋다
    살아 볼수록 이 세상에서 당신이 최고이고
    겁나게 겁나게 좋드라


                                        -- '천생연분'의 부분

     

시인은 아내이자 동지에게 보내는 이런 연애 편지를 자주 선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는 "항상 새순처럼 웃는 당신"만 있으면 "째지게 좋소"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렇고 그런 사람들끼리 만나서 살고 있는 삶과 그런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그들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순수 서정시'의 고상하고 조탁(彫琢)된 언어와는 거리가 있는 표현이다.

이런 형식적 장치가 가지는 장점 외에도 그의 시가 가지고 있는 결점도 만만치 않다. 그의 시가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는 긴 사설에 의존하고 있으면서, 시인에 의해 이야기가 의해 서술되고 있다는 점이 우선 지적될 수 있다. 시인의 사상이나 감정이 직접 서술되거나 설명되는 시 형식은 우리의 민중시 일부가 보이는 결점이기도 하다.

즉 박노해의 시도 역시 서정시의 넓은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라면, 나름의 형상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노동자의 현실, 그리고 각성하는 노동자의 의식이 다른 대상을 통해 형상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시인은 이런 비유나 상징적 형상에 의존하지 않는다. 자신의 이야기를 그리고 사랑과 분노를 털어버리듯이 뱉어내고 있다.

이 나름대로 장점이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이 만큼 절실하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서정시는 행사시와는 달리 순간의 공감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영원히 우리의 마음 속에 남아 있어야 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절실하게 다가와야 한다. 이것이 문학적 표현이나 형상이 가지는 감동의 본질이기도 하다.(그렇다고 해서 박노해의 시가 감동적이지 못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사실도 여기서 다시 밝혀 둔다.)

이 점에서 그의 시는 거리가 멀다. 비교적 서정시의 본령과 가까운 시 예를 들면, '한강', '봄', '석양', '사랑'이나 '어머니' 등에서도 이런 현상은 마찬가지다. 그의 시에는 전투에 임하는 전사(戰士)의 결의만이 나타나 있다. 감상적인 속성을 지닌 서정에 안주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현실이고, 이를 극복하는 과제가 너무 중요하기 때문일까?

 

    이 세상에 태어나 단 한 사람
    어머니의 가슴에 못을 박습니다
    어머님의 간절한 소망을 위하여
    이 땅의 모든 어머니의 비원을 위하여
    짓눌리고 빼앗긴 행복을 되찾기 위해
    오늘 우리는 불효자가 되어
    저 참혹한 싸움터로 울며울며
    당신 곁을 떠나갑니다


                            -- '어머니'의 부분

     

우선 어머니는 자식이 싸움터에 나가는 전사가 되기보다는 행복을 찾는 여행자가 되기를 바란다. 현학적인 신화 비평의 이론을 빌리지 않더라도 어머니는 다정다감하고, 우리가 몸과 마음을 쉬면서 안주할 수 있는 고향과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박노해의 시에 나타난 어머니는 시인과 같이 한(恨)을 간직하고 있는 민중의 한 사람일 뿐이다.

필자도 1980년대가 노동자가 아니 민중들이 행복하게 살기 어려웠던 시대라는 점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좀더 따뜻한 사랑과 아름다운 사랑을 찾을 수는 없었을까? 세상에는 나쁜 사람이나 악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나 착한 사람이 많지 않은가? 때로는 세상의 밝은 면을 찾아 읽을 수 있는 여유는 없었을까? 이것이 노동자의 아니 민중의 서정이라면 더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Ⅳ.
지금까지 필자는 <노동의 새벽>을 새롭게 읽으면서, 그 장점과 단점을 살펴보았다. 이 글을 맺으면서 역사를 부정할 수는 없다는 점을 상기하고자 한다. 1990년대를 반이나 지낸 지금의 현실은 지난 10여년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뀌어져 있다. 그의 최근 시집 <참된 시작>에서 혁명적인 사상가였던 시인도 이 점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는 엄연히 사실로 존재한다. 부정한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 시대의 사회적 현실에 대해 온몸으로 부딪쳤던 박노해 시의 성과는 부정될 수는 없다. 다만 아쉬움이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서는 새롭게 논의될 수 있으리라. 1980년대라는 격동의 시대에 대한 충실한 보고서로서의 역할, 그리고 그런 현실에 대한 각성을 보였던 노동자 외침으로의 역할을 그의 시집 <노동의 새벽>은 잘 보여주고 있다.

이미 고인이 된 시인이자 평론가였던 채광석은 일찍이 이 시집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해설을 한 적이 있다. 이런 평가는 세월이 흐르고 사회 현실이나 국제 정세마저도 많이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유효하다. 그리고 필자가 많은 지면을 채웠음에도 불구하고 이보다 더 요약적으로 이 시집을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 실린 그의 시들은 노동현실의 구체적 체험에 깊이 뿌리박고 그 현실을 살아가는 근로자들의 절망과 슬픔, 원한과 분노의 정서를 놀랍도록 생생하게 담아낼 뿐만 아니라, 이것들이 인간다운 삶을 향한 주체적 일어섬 속으로 녹아 들어가 일궈 내는 민중해방의 정서를 탁월하게 보여주고 있다.('노동현장의 눈동자'에서)
 
 * 참고문헌
신승엽, '노동문학의 현단계', <문학예술운동>, 1987.
윤여탁, '노동 그리고 참된 시작', 김재홍편, <한국대표시평설>, 문학세계사, 1993.
채광석, '노동현장의 눈동자', <노동의 새벽>, 풀빛, 1984.
최원식, '노동자와 농민', <실천문학>, 1985. 봄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4 청소년을 위한 인생노트, '노년의 지혜' / 김노환 file 운영자 2014-04-01 6215
23 중 고교 학부모가 읽으면 어떨까 싶은 책 한 권 운영자 2014-02-21 5787
22 김일석의 다섯 번째 詩 이야기 '살아보니 알겠어' file 운영자 2012-03-27 13283
21 이반 일리히의 유언 / 종교와 시대를 횡단한 르네상스적 자유인 file 운영자 2012-02-02 11071
20 에른스트 마이어 / 진화란 무엇인가 운영자 2011-11-07 11441
19 황성수 / 현미밥 채식 (페가수스) 운영자 2011-10-04 9500
18 전태일 평전 / 조영래(돌베개) file 운영자 2011-08-03 10619
17 스테판 에셀 / 분노하라(돌베개) 운영자 2011-08-01 8775
16 송경동 /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창비시선) file 운영자 2011-08-01 9335
15 소금꽃나무 / 김진숙 (후마니타스 刊) file 운영자 2011-07-27 8586
14 부산지역 노숙인 자서전 / 길모퉁이에 비켜선 사람들 운영자 2011-07-27 8372
» 윤여탁의 평론 / 한 전위 노동자의 체험과 꿈 (박노해, 노동의 새벽) file 운영자 2011-07-22 9477
12 김일석 시집 '5억년을 걸어야 닿는 별' file 운영자 2011-07-08 8385
11 김일석 시집 '지독한 연민 혹은 사랑' file 운영자 2011-07-08 8867
10 김일석 시집 '상념의 바다' file 운영자 2011-07-08 8033
9 김일석 낚시 명상시집 / 오늘도 빌딩숲 속에서 난 바다를 꿈꾼다 file 운영자 2011-07-08 8501
8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 / B급좌파 김규항이 말하는 이 시대의 진보와 영 운영자 2011-07-08 10314
7 오마이뉴스, 예스24 공동 진행 '지난 10년 최고의 책'에 선정된 10권의 책. 운영자 2011-07-08 10151
6 김일석 / Montessori Praxis / 지리 문화, 생명.과학. 역사교육의 이론과 실천 file 운영자 2011-07-08 10277
5 김일석 / Montessori Praxis / 감각, 수학, 언어교육의 이론과 실천 file 운영자 2011-07-08 11191
4 체 게바라의 시적 성정 확인하는 <먼 저편> 운영자 2011-07-08 8771
3 불량하게 읽는 김규항의 '예수전' (돌베개) 운영자 2011-07-08 8752
2 배달호 열사 평전 (부울경 열사회) 운영자 2011-07-08 7832
1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지음 .돌베개> 운영자 2011-07-08 96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