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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 /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창비시선)

조회 수 9788 추천 수 0 2011.08.01 11:00:16
 
207.jpg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어느날
한 자칭 맑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찾아왔다
얘기 끝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오?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전선에 함께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과 함께하지 않았다
 
 
십수년이 지난 요즈음
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다 물결에 밀리고 있고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
걷어차인 좌판과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창비, 2009.
  
 노동시의 새로운 지평을 연 송경동 시인이 전하는 우리 기층민중의 고난의 역사! 
 
거리의 시인이라 불리며, 노동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온 송경동 시인은
현실의 구체성에 뿌리내린 생생하고 비범한 시적 인식으로 노동자의 현실에 대해 펼쳐낸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의 현장, 용산참사 현장 등 야만적인 권력의 횡포가 벌어지는 곳에서
맨몸으로 저항하는 이들과 함께했던 시인이 전하는 현장감 살아있는 시들을 통해 우리 시대의 살아있는 정신을 만나보자.
 
 
석유

어려선 그 냄새가 그리 좋았다
모기를 죽이는 것도
뱃속 회충을 죽이는 것도 그였다
멋진 오토바이를 돌리고
삼륜차 바퀴를 돌리고
누런 녹을 지우고 재봉틀을 매끄럽게 하던
미끈하고 투명한 묘약
맹탕인 물과는 분명히 다르다고
동동 뜨던 그 오만함도, 함부로 방치하면
신기루처럼 날아가 버리던 그 가벼움도 좋았다
알라딘의 램프 속에 담겨진 것은
필시 그일 거라 짐작하기도 했다
개똥이나 소똥이나 물레방아나
나무장작과 같은 신세에서 벗어나
그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렇게
기름때 전 공장노동자가 되었다
빨아도 빨아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도
그의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목차

제1부
혜화경찰서에서
가두의 시
석유
오줌 누고 자!라는 말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똥통 같은 세상
무허가
첫 고료
이 삶의 고가에서 잊혀질까 두렵다
가리봉오거리 연가
마산항 새벽복국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야겠다
목수일 하면서는 즐거웠다
내 영혼의 방직소
그해 늦은 세 번의 장마
김남주를 묻던 날
미행자

제2부
어린 날의 궁전
동지섣달 꽃 본 듯이
우리들의 암송
당신의 운명
어이!
그해 겨울 돗곳
대마치 연가
재개발을 기다리는 까치들
그해 여름 장마는 길었다

겨울, 안양유원지의 오후
어떤 약
생태학습

제3부
나의 모든 시는 산재시다
안녕
비시적인 삶들을 위한 편파적인 노래
너희는 고립되었다
꿈의 공장을 찾아서
멕시코, 깐꾼에서
별나라로 가신 택시운전사께
이 냉동고를 열어라
너는 누구에게 물어보았니
촛불 연대기
황새울 가는 길

제4부
오래 산 나무에 대한 은유를 베어버리라
난지도 쓰레기꽃
참, 좃같은 풍경
주름
경계를 넘어
아직 오지 않은 말들
셔터가 내려진 날
삶이라는 광야
서정에도 계급성이 있다
혁명
뇌파
수조 앞에서
가을, 나무들에게
도살장은 무죄다
당신은 누구인가

해설 | 박수연
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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