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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히의 유언
이한, 서범석, 데이비드 케일리(David Cayely) | 이파르 | 2010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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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국내에 소개된 이반 일리히의 저작 중 내가 읽은 마지막 책이고 작년 10월 중순 공부모임에서 세미나를 진행한 것이다.

당시 서울시장 선거가 한창이었고 나는 책은 읽었지만 박원순 후보의 선거캠프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던 때라 세미나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나는 이반 일리히의 저작 중에서 <학교 없는 사회>와 <성장을 멈춰라> 2권을 읽은 상태였다.

따라서 책을 읽는 중에 이반 알리히와 대아비드 테일리가 거론하는 다른 책, 즉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병원이 병을 만든다>,

그리고 <그림자 노동> 등에 대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이해하기가 어려웠고 서평을 쓰는 것을 주저할 수 밖에 없었다.

책을 읽어보지 않았기에 당연한 것이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 급하게 이반 일리히의 다른 저작 중에서

앞에서 얘기한 3권을 서점에 주문하여 연말까지 읽었고 순차적으로 각 책에 대한 서평을 썼다.

그나마 3권을 읽으면서 이반 일리히의 철학과 문제의식을 이해하고 나니 이 책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고

책에 대한 서평 쓰기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다른 저작인 <자각의 축제>, <불능의 전문가 Disabling Professions>,

<유용한 비고용의 권리와 그 전문적 적 The Right to Useful Unemployment and it's Professional Enemies>,

<젠더 Gender>, , , <텍스트의 포도밭에서 In the Vineyard of the Text>, <과거의 거울 속에서 In the Mirror of the Past>은

국내에 번역,출간된 책이 없어 구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아쉬움이 크다. 앞으로 추가로 국내에 출간되기를 바란다.



1970년대의 다수 저작에서 일리히는 근대 산업생산사회가 사회 전분야를 장악함에 따라 

자본주의, 사회주의와 관계 없이 제도화, 권력화, 전문화를 가져왔고 결국 인간의 자립적, 자존적인 삶을 파괴시키고 있다고 문제제기했다.

학교교육이라는 제도는 학습과 배움을 제도화,상품화하여 인간이 스스로 배우고 학습하는 능력을 훼손하고 있고

수송과 교통은 인간의 이동을 제도화하여 인간의 이동능력을 제한하고 에너지의 노예로 만들었으며,

병원과 의료시스템은 건강을 제도화하여 결국 인간이 스스로, 그리고 공동체 속에서 건강을 유지관리할 능력을 빼앗고

고통, 질병, 죽음에 대한 인간의 자율행위를 불능으로 만드는 것에 더하여 병원이 병을 만듬으로서 '의료의 복수'를 가져왔다.

경제발전과 성장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사회체제의 이념에 관계 없이 대량 생산체제를 가져오게 하여 

인간 공동체와 환경을 파괴하고 제도화와 권력화를 가속화시키면서 전문가와 기술전문관료에 대한 인간의 의존을 심화시키게 되었다. 

이는 인간에게 가치가 있는 모든 것을 상품화, 서비스화하면서 발생하는 상황인 것이다.

 

 

일리히는 제도화, 권력화, 전문가화를 극복하는 방법은
'성장'을 멈추고 인간들 스스로 제도화, 전문가화에 한계를 설정해야 하며 자립적이고 자율적인 공생의 사회로 나가야 함을 역설한 것이다.


일리히는 1980년대 들어 자신이 1970년대 내내 고민하고 문제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했던
제도화, 권력화, 서비스화라는 '근대성'의 출발점에 대해 연구를 거듭하여 '근대성'이 결국 서구사회의 기독교와 관련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서양의 근현대란 "기독교의 타락한 돌연변이, 즉 교회가 권력을 잡고 제도를 만들어
그것에 인간을 철저히 적용시켜 제도를 숭배하게 만든 탓"으로 생겼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는 초기 기독교가 갖고 있던 '벗에 대한 환대와 희망'이 기독교가 로마제국에서 공인받은 뒤 변질, 타락하기 시작해
이웃을 맞아들이는 환대와 관용이 사라지고, 법과 기술, 제도와 물질의 물신화로 나아갔다고 본다.
기독교 신앙은 본래 최선이었으나 권력화 과정이 계속되면서 타락과 최악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는 근대 이후 사회를 기독교의 타락으로 보는 주장으로 나아갔다.
 
 
일리히는 이 문제를 기독교 성경에 등장하는 '예수와 사마리아인'에 대한 분석으로 지적했다.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루카 10,25~37)라는 질문에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에리코로 가던, 강도에게 습격당해 옷도 빼앗기고 반죽음이 된 채 길가에 버려진 유대인 남자 이야기를 꺼냈다.
그 유대인 남자를 보살핀 사람은 성직자도 레위인도 아닌 사마리아인이었다.
그는 쓰러져 있는 유대인 남자에게 다가가 일으켜 세운 후 상처를 치료하고 그를 가까운 여관에 데려가 완쾌할 때까지의 숙박비도 지불했다.
오늘날 상황으로 보면, 팔레스타인인이 유대인을 도운 것이다.
그는 자신의 민족을 보살피려는 민족적 선호로부터 자유로웠고
그래서 자신의 적을 돕는 반역행위를 저질렀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선택의 자유를 행사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서구인들은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누가 내 이웃인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내 이웃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의 질문으로 바꾸어 버렸다.
사마리아인은 자신의 적이나 마찬가지인 유대인을 도와주었으며,
이는 ‘내 이웃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관한 모범이 되는 행위이다.

 

 

일리히는 예수가 말한 이웃 관계는 기대하거나, 요청되거나 의무 지워지는 것이 아니며,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방인을 따뜻하게 대할 의무를 인지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서로간에 자유로이 창조되는 것으로서의 이웃 관계란, 타인과 타인의 육체를 통해 맺어지고,
우리가 결정함으로써 생겨나며, 예수는 이를 이웃으로 행동하는 것이라 일컬었다.

 
오늘날 빈부 격차가 심화되는 사회의 합리적인 통치 수단으로 기독교의 복음을 이용하는 일이 흔하다.
하지만 일리히는 기독교 복음의 핵심으로, 스스로 선택한 가난과 무력함과 비폭력을 꼽는다.
이는 타락한 자나 조롱 또는 무시받는 자들도 갖고 있는 것들이다.
이에 반해 현실의 기독교 교회는 생산 및 소비 지향의 유혹에 넘어갔고, 대형화와 관료화, 신도 회원제를 통한 확장을 추구하는 데 여념이 없다.
복음은 제도화되었고, 사랑은 서비스에 대한 요구로 바뀐 것이다.

그는 기독교의 사례를 "최선이 타락하면 최악이 된다."라고 표현한다. 

 

 
일리히는 우주 만물과 모든 생각 속에 신이 존재한다고 보는 세계관이 훼손된 것과 때를 같이해 근대가 시작되었음에 동의한다.
신과의 관계 속에 사물을 이해해야만 자연은 그 생명을 되찾을 수 있다.
인간은 오랜 옛날 추위로부터 살아남고, 거친 세상을 걸어가기 위해 도구를 이용했다.
신이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흉내내서 인간도 그들의 조건에 맞춰서 사물을 만들게 된 것이다.
도구의 근대적 개념이 세계를 우연성의 정신으로 보는 데서 기원하는 것으로 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또한 도구의 시대는 시스템의 시대로 넘어갔다.
 
 
이 책은 사제직을 떠났지만 평생 기독교 본래의 모습을 염원한 신앙인으로서의 이반 일리히가
서구 근대 세계의 단초를 제공하고 주도해온 기독교에 대한 절절한 바람과 다양한 견해들을 보여준다.
(그는 사회적 공공성의 믿음에서 삶과 죽음을 초월한 참된 신앙인이었고 저 흔해빠진 제도 교회인이 아니라 독실한 자유신앙인이었다.) 
또한 이전의 책들에서 제시한 학교와 병원 의료, 교통 체계와 같은 문제들에 대한 입장을 새롭게 정리함으로써
전체적으로 자신이 가진 모든 열정과 희망을 종합적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한 열정과 희망은 이 책의 원제이기도 한, 일리히가 좋아했던 파울 첼란의 시 구절‘미래의 북녘 강에서’의 내용에도 잘 나타나 있다.
 
 
특히 그가 2002년 점점 커져가는 왼쪽 뺨의 종양으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라디오 진행자와 진행한 대담을 엮은, 그의 마지막 육성을 담은 책이다.
데이비드 케일리는 1990년대 초에 한 차례 대담집으로 엮었던 프로그램을
1997년 이후 다시 진행하면서 대담을 바탕으로 원고를 만들고 인터뷰를 추가하여 이 책을 엮었다.
이 책에는 가톨릭 신앙인으로서 오늘날 지구공동체가 형성되는 데 커다란 토대를 제공했던
서구 근대 세계와 기독교를 바라보는 이반 일리히의 입장과 견해가 담겨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일리히가 평생에 걸쳐 산업문명을 비판해온 자신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가 이전까지 썼던 여러 책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인간과 사회와 자연의 ‘근본’은 무엇이고, 어떻게 지켜나가야 할지를 평생 고뇌하고 연구해온
한 독립적이고 예리한 지성인의 면모가 녹아 있다.


역자는 새삼 이반 일리히의 삶과 사상을 돌아보는 것은
"그가 서구 세계가 주도해온 산업화와 개발 이데올로기에 대한 근원적인 비판에 힘을 쏟았다는 점에서
오늘날 경쟁과 개발이라는 괴물성에 신음하는 한국사회에 갖는 의미가 실로 적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한가운데에는 기독교 신앙의 변질과 타락이 있으며,
제도화를 비판하고 절제할 것을 주장한, 자연과 생명의 회복이라는 그의 간절한 마음이 자리잡고 있다.
 

핸드폰과 정보기술, 그리고 온갖 서비스와 신자유주의 정책이 지배하다시피 하는 사회에 이반 일리히의 삶이나 그 주장은 고리타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속도와 편리성이 주는 비인간화를 경고한 일리히의 외침은 헤아릴 수 없는 의미가 있다.
어떤 기성의 학문적, 사상적 틀도 단호히 거부하고 독창적인 통찰력으로 산업사회의 모순구조를 파헤쳐온, 부드럽고 맑은 영혼의 소유자 일리히는
전 세계가 공생공락의 사회를 이룩하기 전까지 많은 이들에게 끊임없이 중요한 영감을 불어넣어줄 것이며,
언제까지나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면모와 향기를 품고 있다. 

 
일리히는 나에게 더 이상 경제성장, 기술의 진보, 제도화와 전문화, 대량생산, 가치의 서비스화라는
이데올리기에 얽매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인간에게 있어 희망은 자율적, 자립적이고 공생하는 삶이라는 생각이 간절하다.
2002년 고인이 된 이반 일리히씨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 2012년 1월 2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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