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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최초의 라이벌, 형제에 대하여

조회 수 9506 추천 수 0 2007.01.19 22:06:05
운영자 *.166.33.187

정태춘...떠나가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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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울이 적은 형제나 자매의 경우 형제간 다툼과 경쟁이 잦다.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부모가 보기엔 정말 하찮은 주제임에도 목숨 걸고(?) 싸우는 형제의 다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녀의 기질적 특성, 발달단계, 성장을 이끄는 건강한 동력, 부정적인 동기, 공정한 배려의 중요성과 심리적 중재방법 등을 알 수 있다.


대체로 형제간 경쟁의식이 민감하고 다루기 까다로운 경우는 자녀가 둘일 때이다.
특히 일상 속에서 습득하게 되는 성차(性差)의 개념이 작용하는 오누이보다,
아들만 둘이거나 딸만 둘일 때 경쟁관계가 더욱 민감해 지는 경향성이 있다.
셋 이상의, 자녀가 많은 가정의 경우, 둘일 때보다 상호간 친화력도 커지고 덜 예민하며 훨씬 중화된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데,
유아기든 학령기든 최근의 아이들이 전보다 이기적이고 황소고집의 아이들이란 느낌을 갖게 하는 데에는
컴퓨터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은 부모의, 사고 주기가 짧은 신세대 특유의 유행에 휩쓸려 다니는 교육 탓도 있겠지만
저조한 출산율도 한 몫 단단히 하고 있다.


형제간의 경쟁이란 게 ‘부모의 사랑을 누가 더 많이 차지하는가'라는, 극히 단순한 욕망의 문제이기 때문에
일상의 사소한 순간마다 부모의 공정하면서도 지혜로운 대처가 중요하다.
친하게 잘 놀다가도 싸움이 붙기라도 하면 ‘네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걸’,
혹은 '넌 사사건건 날 방해하기만 하는 원수 같은 존재야'라고 생각하기도 하는 게 형제이기 때문이다.


형제간의 경쟁관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방법 가운데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몇 가지를 간추려 얘기하자면
첫째, 가능한 한 형제간 위계질서를 확립하는 일이다.

초등학교 4학년인 준호는 이제 1학년인 동생에게 제대로 형 대접을 못 받는다며 늘 속상해 하였다.
툭하면 뭘 도와달라고 떼쓰기도 하고, 도와주지 않으면 부모님께 일일이 고자질 하여 혼나게 하거나 잔소릴 듣게 했고
먼저 시비를 걸어온다고 하였다.
때려주고 싶어도 워낙 동생을 편드는 것 같은 부모님에게 혼날 것이 두려워 때리지도 못한다며
동생 얘기만 나오면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마침 부모교육 시간에 참석한 어머니에게 앞으로 형제간의 다툼에 나서지 말고
가능한 한 아이들끼리 해결하도록 내버려 두라고 어드바이스를 해주었고,
어느 날 준호는 버릇없이 구는 동생을 때리며 분노를 드러냈다.
물론 어머니는 급한 일이 있는 듯 나가버렸고, 한참 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집으로 들어갔으나 아이들에게 묻지도 않았다.
그런 일이 몇 번 더 있은 후, 결국 동생은 형의 무력에 제압당하였고 형제간 위계질서도 생겼다.
오히려 그 이후 동생은 형에게 버릇없이 굴지 않게 되었고, 형제간 사이가 더욱 좋아졌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두 번째, 기울어진 시이소를 받쳐주는 방법이다.
즉 형제간 갈등 속에서 불리하거나 손해 본 느낌을 가진 자녀에게 별도의 심리적 보상을 해주는 일이다.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아이를 데리고 그 사건과는 관계없이 즐거운 분위기가 예감되는 외출을 계획하거나,
아이가 잠들기 전 따뜻하게 속삭이며 도닥거려주면 심리적 대미지도 상쇄될뿐더러 자존감 훼손을 막을 수 있다.
갈등의 현장마다 부모가 나서서 공자왈 맹자왈 분석하는 태도는
아이들로 하여금 의존성만 키우게 하고, 사춘기엔 중요한 반항의 기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초등학교 6학년에 진학하는 정훈이는
이른 바 1500만 명이나 봤다는 '괴물'이란 영화를 아버지가 못 보게 한다며 투덜거렸다.
기독교 신자인 정훈이 부모는 그 영화가 아이들이 보아서 좋은 영화가 아니라고 믿고 있는 듯했는데
정훈이는 결국 고등학생인 형의 아이디와 사이버 캐쉬를 이용하여 한참 뒤에야 인터넷을 통해 다운로드 받아 보았다고 했다.
매사 분석적인, 답답한 부모 아래에서 나름대로 돌파구를 찾고 있는 핍박받는 형제의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세 번째, 서로의 장점을 인정하는 연습을 하게 하는 것이다.
부모가 아이들의 경쟁심리에 지혜롭게 대응하면 서로의 능력을 고양하는 효과가 있지만
어느 한 쪽을 편애하거나 방관한다면 갈등만 증폭시킬 뿐 아니라 공격적인 성격으로 만들 수 있다.


손끝이 예민하며 후각과 청각이 매우 발달했던 재영은
색종이 접기를 하다가 꼭지점이 맞질 않는다고 소릴 지르던,
성격이 까탈스럽고 민첩하며 너저분한 것을 보지 못하는 민감한 아이였다.
그에 반해 한 살 많았던 누나는 적당히 게으른 데다 움직임이 둔하고 정리도 잘 하지 못하는 아이였지만
엄청난 독서량을 바탕으로 지식이 매우 풍부한 아이였다.
어머니는 아들이어서 그랬는지 샤프한 성격의 동생에 대한 편애가 심한 편이었는데
두 아이의 기질적 차이와 특성을 인정하도록 조언하였다.
예를 들어 누나 방을 정리할 때엔 동생에겐 "네가 배치와 정리를 잘 하니까 누나 방 정리를 좀 도와주렴" 하거나,
가재의 산란에 대해 조사해야 할 때 "누나가 민물에 사는 동물에 대해 잘 아니까 자료 좀 찾아줘"하는
서로에게 심리적인 격려가 되고 둘을 조화롭게 하는 연습을 하도록 권하였다.


형제간의 경쟁이나 다툼을 통해 부모가 명심해야할 것은
아이들이 죄의식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는 일이다.
그래야 성장 후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와 자부심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타고난 기질과 능력이 다른 아이들이 형제간 경쟁과 갈등을 소화하는 연습을 충분히 하면
결국 사회생활에서 주체적이며 응용력이 풍부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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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보이는 산비탈, 마당엔 온갖 식물과 잡초가 구석구석에서 자라던
그 좁은 집에서 여덟 남매, 열 식구가 복닥거리며 살았던 우리 집은
아마도 나날의 삶이 거의 전쟁터였으리라.
약 30~40년 전까지만 해도 집집마다 아이들이 서넛 이상은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노동집약적 산업구조에다 다들 사는 게 만만찮았던 그 시대, 아침마다 책보따리를 들고 학교로 향했던 나의 형제들은
가끔은 학교나 성당에서 주는 급식 빵이나 우유를 얻어먹기도 했고, 적당히 형이나 누나에게 혼나가며 공부하기도 하고
때로는 민들레 씨앗처럼 산동네를 지천으로 뛰어다니며 그렇게 무럭무럭 자랐다.


여덟 남매의 일용할 양식을 단 하루도 포기하지 않고
그저 염소새끼 들판에 던져놓듯 팽개쳐두시곤 매일 바다처럼 울며 우릴 키워주셨던 부모님.
굳이 챙기질 못하셨어도 2~3년 터울로 줄줄이었던 우리 형제 모두가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었던 것은
좁디좁은 집이었지만 나름대로의 내부질서와 경쟁력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제 모두가 50대 이상이 되었음에도 형제간에 화목하고 우애가 깊으니 이도 참 다행스럽고 행복한 일이다.



삶은
바람도 파도도 아니며
꽃도 노래도 아니며
잘 차려입은 신사의 따뜻한 미소가 아니라
눈물로 지은 밥을
매일 같이 먹어야 하는
핏물이 배인
꽁꽁 매여진 사슬이며
남루한 아버지의 외투란 걸
난 배웠다


아버지의 노래 중에서


새해 현대/기아동차그룹 사보, 월간 모터스 라인에 기고한 교육컬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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