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따돌림에 대하여

조회 수 9116 추천 수 0 2007.09.16 12:48:00
운영자 *.123.186.231



Greig...Ase's Death

dongjasung1.jpg



얼마 전 자녀의 성장기 일탈로 고민이 많은 학부모로부터 상담요청이 있었다.

건강가정지원센터 상담사로부터 대강의 정보를 전달받고, 방문시간을 조절하여 아이가 사는 곳으로 고물차를 끌고 갔다.

행정구역상으론 대도시지만 도심과는 많이 떨어진, 평화로운 농촌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논밭의 진초록 빛이 눈부실 만큼 나지막한 구릉과 붕어가 잘 잡혀 낚시꾼이 찾지 않는 날이 없다는, 수초가 가득 둘러싸고 있는 원시적인 모습의 작은 저수지가 마을 가운데 자리 잡고 있었다.

크고 작은 산들이 병풍처럼 마을을 둘러싼 아름다운 환경 속에서 자상하신 할머니와 열심히 일하는 부모 밑에서 매우 자유롭게 보냈던 한 아이의 이야기이다.


대부분의 똑똑한 아이들이 그렇듯 일찍 글을 읽기 시작하여 유아기부터 맹렬하게 독서를 한 아이였는데, 고전. 신화. 지리. 역사와 문화. 과학에 대한 지식과 이해력, 창의력이 상위 5퍼센트에 들 만큼 풍부한 상식과 논리성을 갖춘 총명한 아이였다.

섬세한 감수성, 발달한 협응력, 전체적으로 매우 안정된 감각을 갖춘 아이인데 안타깝게도 학교에 입학하면서 이 아이는 우연한 계기로 집단따돌림을 당하게 되었고, 난데없이 상처 입은 이 아이는 학교를 옮겨달라고 부모에게 울며 요구하였지만, 교실에서 아이가 심리적으로 얼마나 손상을 입고 있는지에 대해 바쁘게 사는 부모는 잘 알지 못했고, 결국 아이의 마음에 진지하게 접근하지 못했던 탓에 도울 수 있는 시기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나무의 소리를 들어봐

많은 벌레가

새들이 

지네, 지렁이, 부엉이가

버섯과 작은 꽃

덩굴이 휘감고 살다 간

나무의 소리를 들어봐

 

아파도 소리 없이 아프고

슬픔과 기쁨도, 아무런 외침도 없이

오랜 시간 제자리에서 

사람의 목숨보다 

열 배나 질긴 목숨 이어온 

나무의 소리를 들어봐



결국 나중에서야 학교를 옮기고 상담도 받아보았지만, 이미 자존심을 훼손당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겪으며 살았던 아이는 덩달아 집으로 돌아오면 학교생활의 후유증으로 혼나는 일도 잦아지고, 부모의 상습적인 훈육 또한 엄청난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학년이 올라가며 부모와 논쟁하는 일이 점점 많아졌고 논쟁에 지지 않기 위해, 혹은 서로 압도하기 위해 과장하고 변명하는 경험을 계속 축적하게 되었을 테지만 남는 건 늘 억울한 느낌뿐이어서 울며 소리 지르고 집을 뛰쳐나가거나 하릴없이 동네를 배회하며 분노와 좌절을 삭히느라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밝고 총명했던 아이의 표정은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아이의 눈빛은 상처와 비례하여 일그러지기 시작하였다.

성장기 아이들의 독특한 행동이나 상황은 한두 번 반복되면 금세 습관화되고, 나중에 그것은 일정한 궤적을 가지고 반복되는 경향성이 있다.

예를 들어 코를 후비거나 수업 중에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하는, 아주 우연한 행동의 반복으로 학급 내 아이들에게서 "넌 더러워서 싫어!"란 얘기를 듣기 시작하면 나중엔 급우들에게 '더러운 아이'로 따돌림 당하기도 한다.


집단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는 마치 습자지가 한 장 한 장 젖은 채 쌓였다가 햇빛에 마르면 돌덩이보다 단단하게 굳어져 버리듯 계속 반복되면 아이는 갈수록 의기소침해지고, 이전에 갖고 있었던 자립심과 창의성도 내면 깊숙이 숨어버리고 만다.

그 지경이 되면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못 본 척 모르는 척 피하려 하고, 외부로 드러내어도 자신 있다고 여겨지는 특정한 내용은 과장하기 일쑤인 상태가 되어, 아이들에게 "오버하지 마라!", "나대는 애"라고 놀림 받는다.



전라남도 가봤어?

강원도 가봤어?

그럼

온천 가봤어?

그럼

따뜻하고 좋았어?

 

넌 반말로 마구 묻지만 

난 아파

너희 집에서 강원도까지 

벨벳 천처럼 섬세하게 직조된 

네 기억 때문이야

 

즐겁다가도 

한숨과 눈물이 함께 했을,   

비바람에 하나씩 툭툭 빠지는

네 마음의 돌담이 

송송히 구멍 나는 걸 왜 

아무도 몰랐을까

 


급우들을 통해 수시로 가해지는 모멸감은 한 아이를 벼랑으로 내모는, 운이 나쁜 사례이며 지혜로운 도움이 없이는 견뎌내기 힘든 상태가 되어버린다.

결국, 아이 스스로 자신을 지키는 방어책으로 생각해 내는 건 '완벽하게' 주변에 무관심한 척 하거나, 또는 일체의 타협 없는 자기주장 하기, 또는 전체를 뒤흔들 만큼의 과잉행동으로 스스로 왕따를 자처하면서도 그에 괴로워하는 급우들에게 은근히 복수도 겸하는, 어느 정도의 자기만족과 고통의 악순환이 계속된다.


시간을 내어 아이가 사는 마을을 찾아 한 바퀴 둘러보고 나니 당장에 보따리 싸들고 이사 오고 싶을 만큼, 한적하고 아름다운 시골 마을이었다.

아마도 거기엔 자연의 넉넉함과 교훈을 뒷받침하는, 이른바 온갖 곤충이며 식물과 동물의 이야기가 있을 테고, 마을을 가로지르는 시냇물에는 전설 같은 숱한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계절과 함께 자연이 변하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배울 수 있는 이야기, 맑은 공기와 물, 초록빛 경관, 그리고 열심히 노동하며 아이들에게 더 교육적이고 친절한 부모와 할머니의 자상한 보살핌까지 갖추어진 환경 속에서 아이는 왜 이토록 나빠졌을까?


눈시울을 붉히며 겸손하게 일상을 고백하는 부모의 마음을 만나고, 또 자신의 고통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을 향해 일그러진 표정으로 분노와 좌절을 드러내는 아이의 슬픔을 만나면, 진실로 이 가정의 행복을 위해 아이가 개선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상 모든 일에는 과정만큼의 결과가 따르듯 성장기 아이들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어디에도 없을 아름답고 넉넉한 환경이 있었지만, 아이의 일상적 소망이나 고통을 이해하지 못했던 부모와 교사의 소통하는 보살핌이 필요했던 사례이다.

맞벌이에 바쁜 부모가 아이를 위해 차선으로 해주었던 수많은 전집류를 읽으며 공상과 소통하고, 혼자만의 세계로 빠져들다 보니 사회성과 균형감각을 잃어버리게 된 경우이다.



널 만나면 헤어질 때 참 힘들어

넌 좋아 팔 붙들고 같이 가자 하지만

우린 틈만 나면 

헤어지는 연습을 해야 하거든

 

그래도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해서

그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

그 사랑이 

불씨가 되어 

온몸에 번져야

우린 씨익 웃으며 

"안녕!"하고 헤어질 수 있을 거야


어찌어찌 살다가 사소한 이유로 원한이라도 품으면 일생을 괴롭히는 게 어른들의 세계지만, 아이들은 진지한 말 한마디에, 친절하게 건네는 과자 한 조각에도 마음을 연다.

주변의 어른들이 진지하게 노력하고 사랑하면 금세 좋아지는 게 아이들이다.

첫 상담을 시작할 때의 서먹서먹함이 아버지의 취미인 낚시를 주제로 고개 몇 번 끄덕이고 나니 금세 친구를 만난 듯 표정이 밝아졌다.

친숙해진 아이와도 이후 몇 번의 상담, 가벼운 산책과 쇼핑을 함께하며 많은 얘길 나누었다.

며칠 전에는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와 아이에 대해 묻길래 표정이 매우 밝아졌으니 이젠 걱정 않으셔도 되겠다 했더니, 아버지의 몇 마디 목소리엔 기쁨이 가득 배어 있어 나도 덩달아 흐뭇했다.


부모의 자식 사랑이야 말할 필요도 없지만, 소통하는 방법을 모르면 이렇게 낭패를 겪는다.

어디쯤에서 무엇으로 막혀 저리 답답해하는지, 아이의 얘길 조용히, 진지하게, 성실하게, 천천히 들어야 한다.

강요하지 말고, 충분히 '그럴 수 있음'을 먼저 이해하고 아이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는 연습과 꾸준히 대화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아이들은 변한다.



small33.jpg

Greig...Ase's Death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6 자기애적 인격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 file 운영자 2015-08-03 4312
55 건강한 아이를 위한 일상의 방법 운영자 2015-01-08 4963
54 경계선(Borderline) 성격장애 운영자 2014-01-05 6020
53 사랑과 중독, 자기애 file 운영자 2012-05-18 9318
52 이상사회를 향한 교육 / 독일교육 운영자 2012-02-22 7803
51 이상사회를 향한 교육 / 핀란드 교육 운영자 2011-11-19 8386
50 어린이를 위한 방학 권장도서 운영자 2011-08-16 8993
49 산만한 아이에 대하여 코털아찌 2010-06-25 8300
48 틱장애란 무엇이며 종류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운영자 2009-10-30 14969
47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하여 운영자 2009-10-30 9980
» 따돌림에 대하여 운영자 2007-09-16 9116
45 초등학생을 위한 기초과학 워크숍 제 1장 운영자 2007-03-13 10806
44 생애 최초의 라이벌, 형제에 대하여 운영자 2007-01-19 9415
43 부모님을 위한 '가정에서의 교육 접근 방법' 운영자 2006-06-17 9550
42 수학교육의 실천적인 예시 1. 운영자 2005-12-23 9719
41 감각교육의 실천적인 예시 2 운영자 2005-12-15 10951
40 감각교육의 실천적인 예시 운영자 2005-09-03 12008
39 낚시를 좋아하시나봐요 눈사람 2005-06-19 9496
38 몇 개의 중요한 개념들과 일탈현상. 초독서증에 대하여 운영자 2005-06-17 11903
37 몬테소리교육 개론 운영자 2005-06-10 14241
36 실천적인 초등 사회.문화영역의 학습전개도 ~~ 2005-02-23 10265
35 소아 & 청소년의 거짓말에 대하여 ~~ 2002-12-22 10927
34 아이가 한 가지 물건에 지나친 집착을 할 때 ~~ 2002-09-21 10918
33 유아 자위행위에 대한 이해 ~~ 2002-09-19 13360
32 말 더듬(말 막힘) 치료법에 대하여 ~~ 2002-09-13 14882
31 소아비만의 예방을 위하여 ~~ 2002-06-24 9898
30 과잉 행동장애에 대하여 ~~ 2002-04-06 8658
29 아이가 악몽을 꿀때 ~~ 2001-11-30 10720
28 어떻게 할까요? 윤경영 2001-09-12 9036
27 답변해드리자면...(영.유아기의 사회성과 행복에 대하여) [1] 운영자 2001-09-12 9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