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모든 상의 의미와 권위를 부정하며

조회 수 4085 추천 수 0 2015.09.06 21:54:09

labor books.jpg



김사인 시인께서 만해문학상을 사양하셨단다.
80년대 후반, 전투적 노동계급문예지 '노동해방문학'의 발행인으로, '새날의 진정한 주인인 노동형제들에게'라는 창간사로 노동자 대투쟁 이후 권력과 자본을 향해, 진영 내부의 개량주의와 조합주의를 향해, 대대적인 계급선동과 전위를 자처했던 '노해문'을 생각하면, 시인의 지나치게 겸손한 사양의 변이 예의 노동형제들에겐 조금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손뼉을 치고 싶다.
어떤 의미의 상이라 할지라도, 인류의 역사에 상은 언제나 기득권에 의해 관리의 도구로 만들어지고 행해졌으며, 또한 상은 인간의 본성을 기름칠이 필요한 기계로 전락하게 한다는 점에서, 나는 모든 상의 의미와 권위를 부정하며 모든 수상거부 행위를 지지한다.

아래에 김사인 시인의 만해문학상 사양의 전문을 옮긴다.

간곡하게 상을 사양하며 / 만해문학상 운영위원회 귀중


몸도 마음도 두루 무더운 중에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뜻밖의 통보를 받았습니다. 과분한 일입니다. 신경림 천승세 고 은 황석영 이문구 김지하…… 무엇으로 문학을 삼아야 좋을지 몰라 방황하던 시절, 별빛처럼 길을 짚어주던 저 이름들이 만해문학상의 초기 수상자들이었습니다. 어찌 벅찬 소식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송구하게도 이번 수상자 심사과정에 제가 작으나마 관여되어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설사 최종 심의결과를 좌우할 만한 비중은 아니라 할지라도, 예심에 해당하는 시 분야 추천과정에 관여한 사실만으로도 수상후보에서 배제됨이 마땅하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그뿐 아니라 저는 비록 비상임이라 하나 계간 『창작과비평』의 편집위원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고, 특히 시집 간행 업무에 참여하고 있어 상 주관사와의 업무관련성이 낮다 할 수 없는 처지에 있습니다. 이 점 또한 제척사유의 하나로 제게는 여겨집니다.


심사위원들의 판단을 깊은 경의와 함께 존중합니다만, 그러나 문학상은 또한 일방적인 시혜가 아니라 후보자의 수락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므로, 후보자인 저의 선택도 감안될 여지가 다소 있다는 외람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에 기대어 조심스러운 용기를 냈습니다. 만해문학상에 대한 제 충정의 또다른 표현으로서, 동시에 제 시쓰기에 호의를 표해주신 심사위원들에 대한 신뢰와 감사로서, 역설적일지 모르지만 저는 이 상을 사양하는 쪽을 선택하려 합니다. 간곡한 사양으로써 상의 공정함과 위엄을 지키고, 제 작은 염치도 보전하는 노릇을 삼고자 합니다.
살아가면서 누군가의 알아줌을 입는다는 것, 그것도 오래 존경해온 분들의 지우知遇를 입는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로인지요. 이미 저는 상을 벅차게 누린 것에 진배없습니다. 베풀어주신 격려를 노자삼아 스스로를 다시 흔들어 꺠우겠습니다. 가는 데까지 애써 나아가 보겠습니다.
저의 어설픈 작정이 행여 엉뚱한 일탈이나 비례가 아니기를 빌 뿐입니다. 번거로움을 끼쳐 거듭 송구합니다.


김사인


- 시인께서 노동문학사 발행인으로 펴냈던 책들. 왼쪽은 창간호, 이후 정간, 필진 수배, 복간 투쟁을 거쳐 나왔던 오른쪽은 복간호이며 카다피의 '그린북'도 있었는데 버렸음...ㅠㅠ
가운데 책은 김미영이란 필명으로 출간되었으며 나랑 친함...^^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09 고갱님, 신청곡 나갑미다! file 운영자 2016-03-30 3929
208 이 밤과 아침의 간절함이 file 운영자 2016-03-28 3803
207 뻥치지 마! file 운영자 2016-03-08 3801
206 왜 내 옆에는 이상한 사람이 많을까? file 운영자 2015-11-03 4175
205 문재인 대표의 화 file 운영자 2015-10-18 4126
204 실낱의 치유와 각성의 자투리라도 file 운영자 2015-10-03 4047
203 철학 에세이 / 통찰력 file 운영자 2015-09-14 4146
202 쌍차 김득중 지부장의 단식 file 운영자 2015-09-10 4314
201 눈물의 기도 file 운영자 2015-09-10 4313
» 모든 상의 의미와 권위를 부정하며 file 운영자 2015-09-06 4085
199 철학 에세이 / 위대함 file 운영자 2015-08-31 3953
198 철학 에세이 / 자기결정권 file 운영자 2015-08-29 3982
197 아, 500일이라니! file 운영자 2015-08-26 3957
196 3일간의 서울 원정기 file 운영자 2015-08-17 3979
195 불법 가택침입을 시도할 생각 file 운영자 2015-08-04 4011
194 '막달리나' 노파~ file 운영자 2015-07-28 4472
193 또박또박 필사한 나의 시 file 운영자 2015-07-16 4198
192 우울증과 사회화 file 운영자 2015-07-06 4193
191 쇼핑몰 file 운영자 2015-07-05 4293
190 할아버지의 오토바이 file 운영자 2015-06-26 4440
189 여행 file 운영자 2015-06-24 4145
188 치유의 글쓰기 file 운영자 2015-06-22 4061
187 안 깐 데 골라 까기 file 운영자 2015-06-19 4005
186 청소나 요리라도 열심히 하자 싶어 file 운영자 2015-06-18 4122
185 친구 이야기 file 운영자 2015-06-12 4064
184 권력의 대마필생 전략 file 운영자 2015-06-10 3994
183 첫 외출, 밀양으로~ file 운영자 2015-06-09 3970
182 알마 섬 귀신 이야기 file 운영자 2015-05-29 4945
181 더는 이 나라에서 못 살겠단 말이다~! file 운영자 2015-05-26 3972
180 바람처럼 영혼에 스미는 평화 file 운영자 2015-05-25 3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