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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는 무덤이다

조회 수 97 추천 수 0 2018.02.01 00:35:30




시집 '조까라마이싱'이 세상에 나온 게 벌써 3년이 지났군요. 

신작 '붉은 폐허'와 함께 관심 가져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나의 시는 무덤이다>


지독한 가난과 체제의 희롱을 견디며 여태 처자식 건사하며 잘도 살아왔다. 부산항을 내려다보는 언덕배기 딱지집 골목을 내달리며 꿈꾸었던 유년기의 기억들, 사라호 태풍에 지붕이 날아가 누워서 바라본 파란 하늘, 어머니의 비명과 장독 깨지는 소리, ‘황금박쥐’를 백 번도 넘게 부르며 아버지 술심부름을 했던, 그 두려웠던 밤의 골목과 바람에 날리는 가마니 변소 문, 제 날에 150원 기성회비를 내지 못해 야만의 교실에서 쫓겨나 종일 동명목재 뗏목을 타고 꼬시래기 낚던 소년, 외로움에 떨던 온몸의 세포, 그 성장기의 짙은 그늘과 귀갓길의 눈물은 참혹했다.


내 기억이 아무리 슬프다 할지라도, 아무나 따먹어도 괜찮았던 깻잎이며 상추 옥수수가 지천으로 늘렸던 공동체 ‘살이’의 명암이 뇌리에 온전히 남아있으니, 이를 문학적 축복이라면 지나친 역설일까. 이젠 기대어 울 언덕 하나 없이, 찾는 이 아무도 없는 오솔길에 떨어져 뒹구는 누르뎅뎅한 땡감 신세가 되었으니 이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80년 벽두에 광주를 만나며 난 절로 거리의 투사가 되었지만, 지금껏 뿌리 깊은 토호세력, 준동하는 권력과 자본의 악마성에 진저릴 치면서도 근근이 버티며 여태 살아남았다. 

사상공단 입구 허름한 철공소 이 층에 만든 작은 보육원, 일당 만 원짜리 삶을 붙들기 위해 정성으로 보살폈던 노동자의 아이들을 통해 시원(始原)을 알 수 없는 생명감각을 배우고, 아이들이 떠난 작은 책걸상에 둘러앉아 꾸벅꾸벅 졸며 ‘인간의 역사’, ‘소외된 삶의 뿌리를 찾아서’를 탐독했던 스덴 공장 경숙이, 미선이, 염산 냄새에 찌든, 그 가냘픈 동생들의 만성두통이 슬펐고, 종일 깔창 붙이느라 본드에 취한 효정이의 치열한 일상과 피곤함이 얼마나 아득했던가.


사상공단의 가투를 이끌었던 비합법(?) 동지들 중에는 이제 중늙은이가 되어 멀건 비탈길 버티고 섰거나, 홍길동처럼 보였다 숨었다, 뭘 하는가 싶어 들여다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음지와 양지를 무시로 오가더니 결국 반동에 기웃거리던 몇 얼굴, 거리에서 만나 동지들의 축복 속에 결혼한 후 병원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던 아내의 지독한 투병 기록과 그 진물 줄줄 흐르는 심연의 기억들은 여전히 시와 현실의 삶을 삼투(渗透)하고 있다.


그 피곤한 노동과 미칠 듯한 연민과 투쟁의 공간에서 어쩌면 나의 시는 숙명처럼 시작되었다. ‘애국’, ‘애족'을 빙자한 친일 문인의 글이 범람하고, 대책 없이 세상에 던져져 눈치껏 살아가는 방법과 처세를 익히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던, 그 만성신경증에 시달리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내 삶의 자잘한 기쁨이란 게 마치 그 악다구니판의 책갈피 같은 것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권력과 인간의 궤적에 대한 논쟁이 끊임없었음에도 여전히 민중을 조롱하고 흔드는 자본의 정밀한 탄착점, 그곳은 인간을 더 파편화하고 물화하는 지점이었다. 

보편적인 민주주의와 복지는 판타지처럼 차고 넘치나 평등과 실천은 극소화된 사회, 무한경쟁과 입신출세가 유일한 가치가 되어 권력은 권력대로, 자본은 자본대로, 개인은 개인대로 8; 2, 혹은 9; 1로 철저히 나뉘어 노동과 생명을 조롱하는 이 참혹함에 맞서는 일에 리얼리스트가 되는 일 말고 또 뭐가 있을까. 

새카맣게 타죽을 각오로 태양에 프러그를 꽂는 창의, 자신을 도리는 시대의 낫날에도 서늘한 향내 기어코 묻히고 마는 향나무처럼, 불굴의 의지로 맞서는 리얼리스트가 되지 않고서야 어찌 하루하루 온전히 견뎌낼 수 있을까.


유미(唯美)적 민족주의로부터 결국 파시즘에 동의체계를 이룬 서정주의 미학을 생각한다. 세상의 변화를 향한 삶의 치열함보다 언어의 응축 서사가 만연하고 탈이념의 사조로 포장된, 노동과 생명에 대한 지독한 왜곡과 부르주아자유주의가 전방위로 살포되고 있다. 

벌겋게 삶을 달군 경험이 없는 젊은 시인은 서사의 결핍에 시달리다 걸핏하면 사랑이니 행복이니,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릴 남발하지만, 고열로 늘어진 아기 부둥켜안고 펑펑 울며 병원으로 내달리거나, 대출 이자 갚느라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 치며 인세 백만 원에 눈물로 옷깃을 적시거나, 종일반에 아이 맡기고 돈 벌러 다니다 불친절하다고 모가지 되기도 하면서 서서히 시의 얼개는 쌀로, 이유식으로, 두부와 고등어로 전이되거나 체제에 맞장 뜨는 문학적 유전자를 온몸으로 흡수하기도 한다.


본디 삶과 문학은 매 순간 고난을 체화하며 견고하게 축성되는 것이다. 활자들이 퍼들퍼들 살아 행간을 기어 나오는, 서슬 퍼런 사유로 몸과 마음을 끓이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무시로 세상 뒤집는 꿈꾸며 자기치유까지 완수해야 하는 지금, 시선을 바닥에 두지 못하고 풍성한 나무 그늘에서 느긋하게 고난을 관조하는 문학이야말로 시세차익을 노리는 브로커와 다르지 않다.


'세상은 변하고 있는가?' 자문자답하며, 무언가 시의 화두 하나 품고 살려고 아무리 쥐어짜도 이게 대체 지옥인지 감옥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이태리 사회주의자 네그리는 삶을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즉시 감옥이라 했건만, 체제가 만든 이 강고한 창살을 문학인들 뛰쳐나올 수 있을까. 보잘것없는 파편을 공유하며 끼리끼리 웃고 떠들다 금세 만들어지는, 이 허술하기 짝이 없는 삶과 문학의 연대는 또 얼마나 느슨한가!


나의 시가 만나는 세상은 헤아릴 수 없는 재앙이며 늪이다. 야만의 세계, 담합의 명수들이 눈곱만큼씩 기득권을 쥔 채 유유상종하며 지천으로 암약하고 있으니, 리얼리스트가 발을 딛고 살 자리는 바로 무덤 아니겠는가, 무덤.



나의 詩는


나의 시는 두려움이었어

산의 10번지에 살던 유년기의 얘기야

이슥한 밤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지

폐허의 정류장을 지나다 우두커니 선 유령을 보았어

오줌을 지릴 만큼 무서웠지

그 앞을 내달리며 난 큰소리로 노래했어

아마 '황금박쥐'를 백 번도 넘게 불렀을 거야

바람에 흔들리는 변소 가마니 문은

어린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이었지

가난한 겨울 취하신 아버지 막걸리 심부름도 

'황금박쥐'가 없인 못 했을 거야

아, 얼마나 많이 불렀을까

캄캄한 골목 달리며 두려움에 질려 그 노래만 불렀거든


나의 시는 외로움이었어

제 날에 기성회비를 내지 못하면 

토끼 후리듯 제자들을 내몰았던 교실에서 쫓겨나 

하릴없이 걸어간 곳이 용당이었지

동명목재 앞 바다를 메운 뗏목을 타고 놀며

외로움이 뭔지 몰랐지만 그냥 쓸쓸했어

누군가 버리고 간 통줄과 미끼를 주워

해 저물녘까지 꼬시래기와 노래미를 잡았지

집에 갈 때엔 다 버릴 고기였는데 한 마리 한 마리 

왜 그리 챙겼는지 모르겠어

뗏목 어딘가에 숨겨둔 책가방 찾아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많이도 울었지

또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게 슬펐어

일곱 형제 학교 보내느라 등골이 휘는 어머니께

기성회비 얘긴 차마 할 수 없었거든

어린 가슴에 쳐들어온 불가항력의 외로움은 

여태 살면서 가장 지독한 게 아니었을까 싶어


나의 시는 거리에서 시작되었어

꽃잎처럼 흩날리던 광주의 눈물을 만나며 

난 서서히 거리의 전사가 되었지

투표로 만들어진 권력은 가짜라고 믿었어

위대한 혁명가의 삶이 날 뒤흔들었고

가투가 잦아지며 무시로 유치장을 들락거렸지

그땐 정말 배를 가르고 싶은 충동으로 살았어

비밀결사의 동지들과 한 잔 마시곤 퀭한 눈으로 

발도 씻지 않고 쪽방에서 뒤섞여 자던 불면의 밤들

남포동에서 오버브릿지에서

대청동에서 서면에서 온천장에서

아가리 쩍 벌리고 언제 우릴 집어삼킬지 모르는

시대를 끝내는 게 그땐 왜 그리 힘들었는지

그래, 젊음만으로 맞서는 게 무리였을지도 몰라


나의 시는 스산한 병원의 그림자였어

아픈 아내랑 내 집 드나들 듯했지

온천극장 문을 나서다가도 응급실로 달렸으며

떡볶이를 먹다가도 응급실로 달렸지

병원은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곳이었어

몸과 마음이 찢어지고 썩어 들어가도 누구 하나 

슬퍼하지 않는 도둑놈의 성이고 부품들의 성이지

고립된 인간이 절규하며 몸부림치는

비열하고 차디찬 체제의 본부 같은 곳이야

인간의 길이 아닌 짐승의 길을 가기로 작정한 

체제가 만든 최고의 걸작이 병원일 거야

목숨 건 싸움을 버티는 패배와 절망의 두려움을 향해 

무한의 겸손과 인내, 눈물과 돈을 요구했어

아내를 반드시 치료해야 했던 난

이미 두 아이의 아버지고 가장이었거든


나의 시는 아이들의 영혼이었어

생사의 경계를 무시로 넘나들던 아내의 몸에서

가을 하늘처럼 맑은 눈을 가진 아기가 태어났지

그 아기는 생애 최고의 기적이고 신비였어

뒤집고 엎드리고 기고 일어나 걷는 걸 보며

모든 아기가 꽃처럼 아름답고 신비했지

우연히 발견한 그 감동은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어

사상공단 입구 허름한 철공소 이 층에서 기적을 보았지

로마 뒷골목 산 로렌쪼의 기적과 비슷한 것이었어

가난한 노동자의 아이를 돌보는 일은

일당 만 원짜리 실낱의 삶을 붙드는 일이었거든

기쁨이고 축복이었던 서른 명의 아이들, 그 작고 여린 

꽃의 궤적을 발견하는데 오래 매달렸지

꽃을 사랑하는 일은 별을 발견하는 것이었고

꽃을 배우는 일은 태양에 몸을 데는 일이었거든

세월이 흐르고 나니 아이들이 날 다 가르쳤더군

이십 년이 훌쩍 지나 비로소 깨달았어

찢어지게 가난했던 노동자의 아이들에게서 배운 건

언제든지 돌려줄 거라 생각하며 살았어

언제쯤일까, 아이들이 내 품에 안겨 잠들고 꿈꾸는

동네 어귀 버드나무 같은 할아버지가 되고 싶어


나의 시는 섬과 바다였어

형이상의 고독을 증폭시키는 곳이 바다였지

반짝이는 별이 어깨에 내려앉아 소곤대는 곳이었어

직벽을 기어오르던 너울이 깨어져 대양을 향할 때 

유랑하는 뭇 생명의 아우성을 들을 수 있었어

생명의 양식이 되기 위한 바다의 몸짓이 파도임을 배웠지

하나둘 반역의 거리를 떠나던 날 난 미칠 것 같았고

공의가 넘실대던 거리는 폐허의 전장이 되고 말았지

패배의 찌꺼기 들이켜는 물신의 거리를 바라보며

난 아무 말 없이 바다로 떠났고 

바다에도 아득한 그늘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

갯내음 우내리 물질하는 해녀도 선장도 

늙은 다방 레지도 그 그늘로 날 초대해주었어

거기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거든

꿈꾸며 돌아올 수 있었던 바다가 좋았어

사는 게 너무 재미없어 가끔 펑펑 울고 싶을 때

바다는 내 투정 다 받아주고 위로해 주었거든


나의 시는 기도였어

모두가 잠든 어느 겨울밤

도둑고양이처럼 찾아 들어간 동네 예배당에서

가장 낮게 엎드리라는 묵언을 들었어

사랑 말고는 내 품에서 모든 게 다 날아갔을 때

그 허기에 남김없이 무너진 후 외려 영혼이 명징할 때 

신은 비로소 손을 내민다는 걸 알게 되었지

어느 것도 허투루 된 것이 없음을 배웠어

사랑하며 살지 않으면 단 하루도 

제대로 사는 게 아니란 걸 깨닫게 된 거지

피 흘리며 성문을 나와 죽음의 언덕 뚜벅뚜벅 걸었던 

외침에 무릎 꿇고 속죄와 평화를 기도했어

권력이 아닌 것과는 싸우지 말라는 위대한 훈육이었지


나의 시는 노래였어

각성의 밤, 바람처럼 창으로 스며들어 

고독한 날 위로한 건 오직 노래뿐이었거든

무수한 상처와 기억을 견디기 위해

숙명처럼 불러야 하는 자기 치유의 노래 말이야

시는 결핍을 사랑한다지만 난 행복하지 않아

아니 결코 행복하지 않으려고 해

그냥 절망의 끝에서 눈물로 깨우치는 노래면 좋겠어

볕 따스한 겨울 어느 날 

담벼락에 기대어 졸던 유년기의 꿈처럼 

잠시 스치는 

따스한 안식의 노래라면 좋겠어 



주 

산 로렌쪼 / "내 일생 최초의, 최대의, 가장 진실한 교육학을 만드는 토대가 되었다."라고 말한 마리아 몬테소리의 교육 방법은 로마의 뒷골목 산 로렌쪼의 낡고 허름한 건물에서 어린이집(Casa Dei Bambini)이란 이름으로 처음 시작되었다. 도시의 빈민 아동을 위한 그녀의 교육실험은 가정과 학교를 건강하게 연결하고, 무너진 사회를 재건하는 커다란 동력이 되었다.


우내리 / 난바다의 너울파도를 일컫는 섬사람들의 방언.


시집 '조까라마이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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