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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9~12

조회 수 7089 추천 수 0 2008.06.19 03:22:04

 

 

 

어학연수 중 사세보에서 나가사키로 향하는 길에 볼 수 있는 두 개의 철교 중 하나을 찍었다.

 

 sasebo bridge2.jpg

 

 

 

9.

 

먹을 걸 찾아 흙을 파고
꾸역꾸역 걸어 돌틈 헤집고 나무를 타는
두려움 없는 개미처럼

후텁지근한 고속버스

주름살 골마다 노동의 땟국 흐르는
그녀가 "영양밤"을 외치며 올라서서

내게 말했다
"삶은 전쟁이에요."

사람들은 퇴짜를 놓았지만 

그 덕담 한 마디에 한 꾸러미 밤을 샀다

고소하고 맛 좋은 영양밤 한 봉지
덕분에 삶을 꼭꼭 씹으며 

육탄전을 했다.

 

 

10.

 

네 몸이 하얀 

뼛가루 한 움큼이었다

이래도 되는 건가

눈물 메마른 산길 오르며
네 이름만 불렀다


바보, 그냥 살지

그깟 외로움 참고 살지

농약을 털어 넣으며 했을

결단의 그 밤이 서러워 

아무것도 믿을 수가 없었다

 

 

11.

 

밑천 떨어지면 없는 말도 지어내 웃다가
부드러운 한 마디 던지곤 툭 끊는 전화
퇴행적 습관을 통한 친밀감 따위
전화요금 오륙만원으로 갖는 연대감의 허위
이게 매일 뭐 하는 짓인가?

 

헛때기 잡는 누군 그래도 정든다 하지만

누가 시집 장가 간다거나 누가 죽었다 하면
봉투에 오만원 넣을까 십만원 넣을까 고민하는
그런 연대감으로 사는 삶

 

열정, 용기, 저항, 원칙

이런 것들은 하나 둘 떨어져나가고
변명, 능력, 현실, 순종, 나이, 이런 게

온 몸에 덕지덕지 붙어 웃다가도

울다가도 하루 지나면
가볍게 거래하듯 연대감을 나누는 우린
보잘 것 없는 존재이다.

 

가끔 너무 힘들고 

눈물 없이 버틸 수 없는 벼랑에 서게 되었을 때
오직 사랑 하나 꼭 보듬고 정직하게 죽어야지
각오하고 또 각오한다.

 

 

12.

 

오랜 연식의 차처럼

빙하가 녹듯 

여기저기 툭툭 터져 흘러내리는 

내 사랑

나날의 아침 기도하며 

구석구석 고쳐
전력 다해 살기로 했다

 

 

 

 

Mischa Maisky...아르페지오네 소나타 1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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