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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론, 낚시 미학

조회 수 14489 추천 수 0 2006.07.30 03: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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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론(雜論), 낚시 미학

 

1. 합일의 미학

 

비슷한 성격의 일을 반복하게 되면 그 일의 성질이 몸과 마음에 배게 되는 현상이 있다. '말씀이 내 몸과 같이 되어...", 이 성경 문구처럼 종교적으론 육화(肉化)라 하고, 발달심리학에선 체화(Incarnation)라고 한다. 즉 반복된 행위와 정보가 누적되어, 같은 상황에서 같은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함께 있으면 눈곱만큼 사소한 것에도 잘했니 못했니 끝없이 따지려 들면서도, 정작 자신의 마음과 시선의 편협함은 인식하질 못해 수시로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고도, 뭘 잘못했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과 타자와의 진정한 합일의 의미를 놓치고 사는 경우이다.
드넓은 수평선과 넘실대는 파도, 깎아지른 직벽군과 거친 갯바위, 비릿한 내음의 바닷바람, 보이지 않는 물속 생명과 나누는 긴장감, 평화로이 나는 갈매기..., 거칠면서도 한없이 풍요로운 바다의 이런 요소들과 교감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점점 바다의 특징적인 요소들을 닮아간다. 단순히 고기 잡는 행위인 낚시를 통해 대자연을 닮아가는, 자연과의 합일에 성공한 진정한 꾼이 되는 것, 바다를 닮는 것, 내 몸과 마음속에 바다를 품고 사는 것, 그것을 난 합일의 미학이라 부른다.



2. 소통의 미학

 

광활한 바다, 그 어디쯤 갯바위에서 나누는 사나이들의 우정은 얼마나 각별한가? 낚시터로 가고 올 때, 배에 오르고 내릴 때, 부족한 재료지만 정성껏 음식 만들어 나눠 먹을 때, 좁은 텐트에서 물때 기다리며 짧은 휴식을 할 때, 드넓은 바다를 함께 바라보며 함께 대를 드리운 흥분, 그건 아마도 꾼만이 맛볼 수 있는 세상일 것이다. 직업, 사상, 나이, 남녀, 빈부의 차이가 없는 평등 세상은 바다가 유일하지 않을까?
"어디서 오셨나요?", "좀 잡으셨습니까?", "여기 회 한 점 하십시오."하며 강한 동질감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 사장도, 노동자도, 김 선생, 이 선생도, 난전에서 과일 파는 사람도, 이웃집 형님도, 선배도, 후배도 모두 바다에선 낚시꾼일 뿐이다. 갑자기 내린 주의보, 거대한 너울파도, 퍼붓는 비바람과 돌풍, 그 일측촉발의 상황에서 목숨 걸고 바다를 빠져나오며 나누게 되는 호흡이란 가히 꾼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세상이다.
바다엔 특유의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평등주의가 있다. 그건 바다에서 경험하는 또 하나의 미학이다.



3. 삶과 죽음의 미학

 

낚시란 고기를 잡아 죽이는 극히 단순한 수렵행위지만, 거기에도 그 어떤 경지가 있다. 일급 포수는 돌아선 동물에게 총을 쏘지 않는 법이며 진정한 전사는 적의 등에 칼을 꽂지 않는다.
절제와 품격을 바탕으로 하는 그런 정신세계로 가는 데에는 수련이 있어야 한다.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일상의 자선과 봉사가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듯, 스스로 의미를 찾아 행하는 절제된 낚시야말로 수련의 훌륭한 도구가 된다.
크든 작든 바늘을 물고 올라온 첫 고기를 향해 "나에게 첫 손맛을 안겨준 게 고마워 네가 살던 곳으로 되돌려 보내주마!", "내가 노리던 대상어가 아니어서 널 살려주겠어.", 뭐 이런 의미를 스스로 추구하는 게 참 낚시를 위해 노력하는 꾼의 모습이리라.


몇 마리의 고기를 잡아 맛있게 요리해 먹는 거야 나쁘지 않은 일이겠지만, 그저 많이 잡아 거들먹거리거나, 잡히는 족족 챙겨와 피 범벅된 포획물들을 고작 식탁의 먹을거리로만 생각하는 것은 낚시를 수확 중심으로 생각하는 어민적 사고일 수 있다.
조준 사살하는 작살로 포획한 고기들을 꿰미 가득 들쳐메고 나오는 스쿠버의 모습에서 자연에 반하는 일탈을 느끼듯 낚시도 마찬가지일 터, 어떤 방법을 택하여 고기를 잡든 살아있는 동물을 잡아 죽이는 일에는 그것이 한갓 미물일지라도 자연과 생명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야 한다. 수렵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고, 제대로 된 꾼이라면 근해자원에 대한 고민과 자연의 씨앗이란 개념을 가지고 있어야 삶과 죽음의 미학이라는 심미적 가치와 만날 것이다.


오래전 일이다. 소리도 거북여란 곳에서 55cm쯤 되는, 그 바닥에선 상당히 큰 감생이를 잡아 집으로 가져왔다. 당시 병환으로 누워계시던 어머님께 고기를 보여드렸더니 "아이구 얘야, 앞으로 이런 거 절대 잡아오지 마라", "그냥 잘 살게 내버려두지 뭐하러 이런 걸 잡아왔느냐?"며 정색을 하시는데, 그건 어머님의 생명에 대한 가르침이었다. 그 뒤론 큰 고기를 별로 잡지도 못했지만, 간혹 잡는다 해도 특별히 고기를 써야 할 경우가 아니면 바다로 되돌려보내는 걸 원칙으로 해왔다. 보찰여의 대물 참돔은 형님의 개업기념잔치에 썼고, 다무래미의 육짜 감생이는 암 투병 중이던 벗에게 보내 푹 고아 먹고 얼른 일어나기를 소망하였다.
고기를 잡는 행위를 통해 체득하는 의미, 그것은 수렵의 쾌락에서 부지불식간 삶의 수련과정으로 이끌기도 한다.



4. 거장(巨匠)의 풍모 미학

 

어떤 분야든 좌충우돌하는 입문과정을 거친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마니아의 세계가 찾아온다. 철저히 개인의 경험에 바탕을 둔 실험을 거듭하는 시기여서, 집중의 강도가 더없이 깊고 추론의 폭이 넓어지며 학습과 논쟁의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스스로 어찌할 수 없었던 그 광적인 몰입과 흥분도 잠깐이며 어느 순간, 마치 몸의 때가 벗겨지듯 서서히 사그라지기 시작할 때가 온다. 이른바 유유자적의 시대, 만사 하는 둥 마는 둥 동서남북으로 관심을 가지지만, 어느 것 하나에도 집착하지 않고 손을 놓아버리는 시기를 맞는다.


시를 쓰되 쌓아두기만 하는, 연구는 하되 발표하지 않는, 그런 시기를 어느 정도 보내고 나면, 다시 놓았던 것들을 하나씩 들추고 챙기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전문가의 세계에 든다. 겉으론 남루하지만, 속으론 번득이는 기를 지니게 되는 그 세계는 비판보다 분석이 앞서고 투쟁보다 설득과 관용이 앞서는 시기이다. 매사 부드러우면서도 예지력이 빛나는 시기를 보내며 다시금 한눈팔지 않고 정진하다 보면 또 다른 세상, 거장의 세계로 가는 문이 열린다. 거장이라 함은 전문가의 제왕을 일컫는 말일진대, 이른바 마에스트로라 할만한 영역이 낚시라고 없으란 법 없다.


거장은 서두르지 않으며, 오랫동안 매달리지도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전문분야의 여러 요소 가운데 특정한 요소를 떼어내 편식하지 않듯, 국한된 장르에 집착하지 않는다. 상황에 대한 진단이 빠르고 특유의 희생과 친절이 몸에 배어 있으며, 말과 글로 자신의 세계를 설명하려 들지도 않는다. 번득이는 눈빛과는 언바란스인 남루한 옷차림, 예를 소중히 여기며 지독히 말을 아끼는 침묵의 제왕, 그가 바로 풍모 미학을 느끼게 하는 거장이다.
거장의 아름다움이란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평화, 몸에 밴 절제된 품성에 있다. 타자와의 관계에서도 진정한 존경과 겸손을 실천할 줄 아는 거장의 풍모란 가히 낚시미학의 정점에 있는 아름다움이다.


5. 신념의 미학

 

누가 뭐래도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하는 모습은 믿음직하다. 신념이란 어떤 상황이 닥쳐도 믿으며 행하는, 스스로에겐 매우 엄격하고 끊임없이 내면의 결단을 요구하는 것이다. 진정한 엄격함이란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의를 위해 희생하는 엄격함이다. 바다를 사랑하는 꾼의 신념이란 일생을 두고 대자연을 흠모하며 끈질긴 투쟁을 할 때 빛을 발한다.
대규모로 뿌려지는 양식장 사료, 걸러지지 않은 생활하수, 어업과 낚시로 투기 되는 맹독성 금속인 납, 오염물질의 해양투기 등 바다를 망치는 이 모든 것들과 투쟁하고자 하는 신념은 바다와 더불어 살아갈 꾼에겐 하나의 철학이고 사상이 되어야 한다.
청정해역이었던 아름다운 남해가 이젠 유럽, 아프리카 연안, 미국 동부 연안, 벵골만, 동남아시아 연안과 함께 해양오염 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다는 것은 꾼으로 하여금 더욱 굳건한 신념과 확고한 해양사상을 요구하고 있다.


오래전, 작도에 좌초하여 남해안에 엄청난 기름을 쏟아부었던 씨프린스호 사태가 났을 때, 수많은 사람이 나서서 크고 작은 섬 갯바위를 일일이 걸레로 닦는 걸 보며 바다를 품고 사는 사람들의 끈질긴 신념을 보았다. 어찌해볼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기름과 세계 해난사고사상 가장 많은 유화제가 뿌려졌던 남해. 조류를 따라 오가는 거대한 기름띠와 전 해안선을 뒤덮었던 유화제로 갯바위 구석구석을 닦는 모습은 처절한 투쟁이고 절규였다.
기름 분자를 머금고 바닥에 가라앉은 유화제는 남해안 전역에서 고착성 어종인 볼락을 절멸케 했고, 그 사고의 후유증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이후 생태계 복원에 족히 50년은 걸릴 거라 하니, 바다를 향한 꾼의 신념은 현재진행형의 치열한 것이어야 한다.


6. 어류 미학

 

생김새가 다르고 입질 형태와 손맛, 고기 맛도 다르며 대상어마다 방법이 다른 것도 낚시의 맛이다. 한 마리의 대물과 벌이는 가당찮은 희열도 맛이겠지만, 각각의 낚시가 주는 특유의 맛을 깊게 음미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전술훈련을 하는 군인,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 거래를 이루려는 영업부 직원, 맛난 음식을 만들려는 요리사의 일상처럼, 바다에서 시간을 보내며 자잘한 행복을 추구하는 휴식도 의미 있는 법이고, 크고 작은 물고기를 상대하며 벌이는 집중과 긴장감도 의미가 있다.
밤낚시의 정취, 예민해진 바다의 조건에 기민하게 대응해야 하는 신경전, 경쾌하게 케미라이트를 끌고 들어가는 입질, 미세한 숙련도의 차이에도 조과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볼락낚시의 묘미, 그리고 까탈스런 입질을 극복하는 섬세한 채비 놀림과 집중력, 멀리 흘려보내는 호쾌한 과정, 대형어의 품위있는 모습, 무리 지어 회유하는 온갖 잡어를 꼬드기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발견하는 일, 이 모든 것이 낚시의 맛이고 멋이다.
생각해 보라, 우리의 삶에 잡어처럼 성가신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피곤한 노동을 마치고 돌아와도 부모이기 때문에 아이들과 놀아주어야 하고, 남편이기 때문에 아내와 끊임없이 창조적인 데이트를 계속해야 하며, 거만하고 욕심 많은 사람을 만나 때론 듣기 싫은 얘기도 억지로 들어주어야 하고, 가끔은 죽고 싶을 만큼 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반복 노동, 이것들은 분명 우리네 삶의 고등어며 메가리고 학공치며 노래미다.
하나, 매일같이 노력하며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게 삶이듯, 어류 미학이란 것이 그 무슨 잡어낚시라 할지라도 철저히 노력하며 그 긴장감을 충분히 즐길 때 비로소 체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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