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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일기 202 / 나는 개돼지야

조회 수 3435 추천 수 0 2016.07.12 07: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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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돼지야


내 손에서 짱돌이 사라지고

분노와 연민이 뒤엉킨 전복(顚覆)의 불꽃이

내 심장에서 흔들리고 사그라지자

이제 대놓고 날 개돼지라고 해

그래 맞아

가끔은 개가 되어 고개 숙이라 하면 아예 기었고

눈에 띄는 밥그릇마다 돼지처럼 찾아 핥았어

체제의 온실에서도 적당히 먹고살 만하니 난

잘 익은 열매처럼 실실 쪼개며 살았거든


너희가 만든 온실의 도덕률은

살이 쪄 움직임이 더디고 게을러진 내 안의

사분오열을 조롱하더니 이젠 대놓고 날

배만 부르면 행복한 족속이라고 해

그래 맞아

수백의 꽃송이가 수장되고

차벽으로

물대포로

분노와 눈물을 가두고 묶어도 난

지리멸렬의 중심을 세우지 못했거든


평화를 빙자한 반 평화의 음모와 청탁을 보고도

민주주의를 빙자한 범죄를 알게 되었을 때도

뿌리의 절망을 견디며 누군 하늘에 오르고

누군 유서를 쓰고 몸을 던졌어도

나는 울기만 했지 송곳 같은 대척점을 만들지 못했어

우상 앞에 열병케 하고 충성을 강요해온 저

지고한 개발주의에 굴복하고 아첨했던

네놈들의 무한 노략질을 뜬눈으로 보고도

핏빛 전선을 꾸리지 못했으니

내 어찌 개돼지가 아니라 하겠어


그래 씨발, 난 개돼지야

네놈들 식탁의 훈제연어 살점과 브랜디도

네놈들이 주둥일 대고 후까시 넣는 연단도 마이크도

넘치는 여유를 주체하지 못하는 네놈들이

체제의 세작들과 흥정하며 무시로 '위하여!'를 외칠 때

네놈들이 먹고 마시는 모든 걸 세상에 내고도 나는

그저 배만 부르면 되는 개돼지였어


바다를 향한 개울의 꿈을 망각한 나는

눈물, 그 심연과 손잡는 법을 놓아버린 나는

하방의 모든 길을 값으로 매기는데 익숙했던 나는

조직과 책임을 팽개치고 세상을 부유했던 나는

내 안의 개량과 습속을 깨부수지 못한 나는

끝내 체제의 종말을 노래하지 않았던 나는



사진 / 2006년, 대추리 도두리 행정대집행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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